“우리는 아무도 겁낼 필요가 없어. 사람들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이 있다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야. 예를 들면 네가 나쁜 짓을 한 적이 있고, 다른 사람이 그걸 알고 있다면, 그는 너를 지배할 힘을 갖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제 내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내 유년 시절의 종말을 알리는 예감과 꿈의 영상들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하나하나 이야기 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어두운 세계’, 그 ‘다른 세계’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때 프란츠 크로머였던 것이 이제는 나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
“세계의 이 온전한 부분, 이 절반 전체가 은폐되고 묵살되어 버렸어. 사람들은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찬미하면서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성생활은 그냥 묵살하고, 가능하면 악마의 소행이며 죄악이라고 선언하는 거야! 나는 이런 신인 여호화를 숭배하는 것에는 조금도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인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공식적인 이 절반의 세계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숭배하고 신성시해야 해!”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그러나 아브락사스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의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희열과 전율, 남성과 여성이 뒤섞인 것, 가장 신성한 것과 가장 추한 것이 서로 뒤얽힌 상태, 더없이 사랑스러운 순진무구함에 의해 경련을 일으키는 깊은 죄악, 이것이 나의 사랑의 꿈속에 나타난 영상이었고, 그리고 아브락사스이기도 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어떤 엄청나게 추악한 짓을 저지르고 싶다면, 그렇게 당신의 내면에서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은 바로 아브락사스라고 잠시 생각해 봐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거예요. 우리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지 않은 것에 우리는 흥분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때 갑자기 나의 내면에서 하나의 깨달음이 맹렬한 불꽃처럼 타올랐다. 즉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은 있지만 누구에게도 스스로 선택하고 정의하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직분은 없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신을 원하는 것은 잘못이었고, 이 세상에 무언가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완전한 잘못이었다! 깨달은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찾고, 내면을 굳게 다지며, 어디로 가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가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의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유럽의 정신과 이 시대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디서나 동맹과 집단의 형성이 유행하고 잇지만, 자유와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대학생 동아리와 합창단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체는 강제적인 결속이며, 불안과 공포, 당황에서 비롯된 공동체인데, 그 내부가 썩고 낡아서 붕괴 직전이라고 했다.
“전 그 당시 때때로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인생길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힘든 것인가요?”
부인은 내 머리를 손으로 바람처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태어난다는 것은 늘 힘든 일이지요. 알다시피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애쓰지요. 기억을 돌이켜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이 그렇게 힘들었던가? 단지 힘들기만 했던가? 또한 그 길이 아름답지는 않았던가?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고 있었던가?”
“나는 구세계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 처음에는 아주 미약학 희미한 예감이었지만, 점점 분명해지고 강렬해졌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나 자신과도 관련된 크고 무서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뿐이야. 싱클레어, 우리 우리가 가끔 이야기했던 것을 체험하게 될 거야! 세계는 스스로를 쇄신하려 하고 있어. 죽음의 냄새가 나고 있어. 새로운 것이 오려면 죽음이 따르기 마련이지.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야.”
거대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우고 있었다. 그 알은 세계였고, 그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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