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여성이 소비지상주의에서는 절대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며 페미니즘이 반소비지상주의를 지향해야 하는지, 그 이유의 일부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밖에 나가기 전 치장해야 한다고 느끼도록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존재가 아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은 자사의 상품이 없으면 여성들 스스로 뭔가 부족하거나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을 받도록 설득해야 했다. (……) 소비문화는 성이 상품화되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여성들을 끊임없는 자기 감시 체제에 밀어 넣은 다음, 실패할 경우의 책임을 극단적인 미의 기준이 아니라 여성에게 돌린다. 이 과정에서 선택, 자유, 독립과 같이 본래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개별 소비에 국한된 의미로 사용된다.
--- p.23-24
탈코르셋 운동에 있어 한 가지 더 살펴보고 싶은 개념은 아비투스(habitus)다. 아비투스의 개념을 알면, 탈코르셋 운동 실천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아비투스란 개인이 속한 계층성을 충실히 반영?재생산해내는 사회적 식별 체계로, 피에르 브르디외(Pierre Bourdieu)는 “아비투스의 도식은 계층 분류화의 주요 형태”라고 설명한 바 있다. 화장에 대한 관심이나 취향과 같은 특정 아비투스의 발현은 ‘여성’이라는 성별 계층성의 고유한 특질로 고정화되는 것을 강화하고 가속화한다.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 식별 체계로서의 아비투스 도식의 임의성과 우연성을 비판한다. 긴 머리, 배려, 순종적인 태도, 볼륨감 있는 몸매, 예쁜 얼굴 등 임의적 요소들의 연쇄적 배열이 여성성을 감별하는 필연적 요소가 될 수 있는지 반문하며 이 같은 아비투스의 연쇄 사슬을 절단하고자 한다. 여성도 민낯에 삭발을 하고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호전적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 p.30
“탈코르셋은 금욕 운동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오히려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으레 ‘욕망’이라고 자연시되는 부분에 과하게 투여했던 자원을 중단해보자는 캠페인이죠. 시간과 물질·정신적 자원은 제한돼 있는데 옷이나 화장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쓰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탈코르셋으로 그런 욕망과 거리를 확 두고 나면, 내가 욕망이라 생각했던 게 사실은 이 정도면 족하다는 걸, 이 자원을 다른 데 쓸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돼요. 그러니까 꾸밈 노동에 대해 ‘자기만족 VS 사회적 세뇌’ 프레임으로 계속 싸울 게 아니라, 왜 그것을 했고,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괴로워했거나 놓쳤던 게 무엇인지 돌아보는 게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 p..39
경계에서 망설이고 있던 나를 붙잡은 단어는 ‘수치심’이다. “여성들은 수치심의 학습을 통해 규범적 여성성의 수행을 학습한다.”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의 저자 이민경은 이렇게 말한다. “운동에 참여한 몸만이 경험할 수 있는 변화가 생긴다. 규범에 부합하는 데 실패한 몸은 수치심을 통해 규범을 내면화하지만, 애초에 규범에 포섭되지 않은 몸은 더 이상 수치심을 내면화하지 않는다.” 나 역시 여성에게 요구되는 특정한 규범을 내면화하며 자라온 ‘한국 여성’ 중 한 명이기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설령 타인의 시선엔 상대적으로 무심할 순 있어도 나의 내면엔 여전히 수치심이 똬리를 단단히 틀고 있다는 걸 말이다.
--- p.47
연예인 못지않게 꾸미거나 꾸밈을 권하는 여성, 자신의 외모를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전시하는 여성이 주위에 있을 때 생성되는 묘한 긴장감, 불안감, 피로감을 우린 잘 알고 있다. 표출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들. 이런 복잡한 감정의 레이어는 여성이 여성을 신뢰하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그에 비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세뇌된 미의 기준인 ‘여성성’을 벗어 던진 여성의 외양 ‘탈코르셋’은 남성의 시선과 욕망을 전제하지 않는 여성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 사람은 준거집단이 남성일까 여성일까?’ ‘여성연대의 의지가 있을까?’ 같은 ‘세컨드 게스’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에 소모되는 에너지도 없다. “나에게 여성해방은 상상이 아닌 지금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하철에서든, 거리에서든, 도서관에서든 ‘탈코’ 여성을 마주칠 때 이 메시지가 전송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얼마나 효과적인 신뢰 커뮤니케이션인가?
--- p..55-56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에서의 발전과 일이 잘 풀리는 이유에 관해 좋은 생각을 반복하면, 자존감이 올라가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기 가치 확인’으로 자존감을 다지면 타인의 부정적인 발언이나 반응에 덜 흔들리게 되고, 자기계발을 가로막는 장벽을 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좋은 ‘자기 가치 확인’이란 무엇일까? 현재 시점이고,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으며, 감정적으로 중요한 가치나 목표를 포함하고, 진취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가령 “내 이름은 프리다이고, 매일 그림 연습하는 걸 좋아하는 창의적인 예술가이며, 연말에 그림을 출품할 것이다.”와 같은 문장이다. 이 ‘자기 가치 확인’은 매일 반복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다.
---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