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3년 0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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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625g | 147*225*30mm |
ISBN13 | 9788960512870 |
ISBN10 | 8960512877 |
발행일 | 2013년 0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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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625g | 147*225*30mm |
ISBN13 | 9788960512870 |
ISBN10 | 8960512877 |
추천사: 유진규 머리말: 왜 이 책을 써야만 했는가? I.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1. 농업의 본질은 파괴다 생명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한 텃밭 가꾸기 | 지속 가능한 비료라는 게 가능한가? | 인간도 먹이 사슬의 일부일 뿐 | 사과도 동물을 먹는다 |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착각 | 농업의 열쇠를 쥔 일년생 초본 | 농업에 중독된 인류 | 농업의 본질 | 생태계를 뿌리째 집어삼키는 농업 | 지속 가능한 농업이란 없다 | 강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녹색 혁명의 비극 | 죽는 땅이 늘어만 가는 미시시피 유역 |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질문 2. 동물은 안 되고 식물은 된다? 처치 곤란 민달팽이, 비건 식으로 해결하기 | 호흡주의의 ‘정의’라는 것에 대해 | 도덕적 채식주의자를 위한 간단한 산수 | 영속 농법 농장 방문기 | 생명은 죽음으로써만 가능하다 | 동물 권리 옹호는 인간 중심적인 생각 | 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동물권 옹호 | 생명이란 상호 의존의 연속 | 채식주의는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 식물은 먹어도 괜찮은가? | 인간의 척도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식물의 생명 활동 | 식물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 생명에는 범위가 없다 II.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3. 현대 소는 옥수수를 먹고 큰다 박테리아와 동물의 상생 | 무지와 부정직함에서 비롯된 착각 | 정치적 채식주의자가 알아야 할 산수 | 전쟁과 농업의 교집합 | 곡물은 또 다른 화석 연료 | 소가 풀이 아닌 옥수수를 먹게 된 사연 | 과점 기업이 지배하는 세계 곡물 시장 | 값싼 농산물은 기아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 | 정치적 채식주의에서 말하는 ‘정의’의 한계 4. 사람이 너무 많다 수용 한도를 넘어 웃자란 인류 | 환경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아야 | 이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 인구 증감은 문화가 결정한다 | 지속 가능성과 평등성은 별개 | 농업 문명의 신화에서 깨어나야 III.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5. 지방에 새겨진 주홍 글씨 현재의 인간을 만든 건 육식 | 우리 몸은 고기를 먹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 곡물 식사의 위험성 | 필수 아미노산은 있는데 왜 필수 탄수화물은 없을까? | 고탄수화물 식단이 불러오는 위기들 | 콜레스테롤은 억울하다 | 역학 연구 결과를 취할 때 유의할 점 | 지방 가설은 “의학 사상 최고의 사기극” | 내가 폭식 혹은 실수라고 오해했던 그것 | 지방, 알고 따지자 | 암을 모르고 사는 원주민 | 비건이 당을 찾는 이유 | 식품 산업 자본의 임상 실험 대상이 된 세계인 | 심장병 신화의 탄생 | 신화는 살아남았다 | 이제 기름진 음식을 찾아 나설 때 6. ‘만병통치약’ 콩의 진실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콩 | 유아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 만드는 공정을 알면 먹지 못한다 | 아이들을 위험 속에 계속 두어야 하는가? 7. 채식주의자들을 찾아오는 식이 장애 뇌는 먹어야 한다 | 비건의 길은 자신을 파괴하는 길 | 마침내 멈추다 | 채식주의 식단을 유지할 때 일어나는 일들 | 채식주의자에게 고함 맺음말: 세상을 구하려면 채식주의자들이여, 세상을 구하고 싶은가? | 흙이 희망이다 | 지금 사는 곳을 돌아보라 | 현대 문명의 미래를 알고 싶은가? |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 그나마 효과 있는 개인적인 해결책 세 가지 | 달콤한 동화는 잊어야 할 때 | 나를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음식 감사의 말 부록 참고 자료 |
환경과 먹거리에 관심없는 일반대중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겠지만 관심있는 소수의 환경론자들에게 이 책은 호불호가 분명히 나뉠 정도로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만한 책이다. 그래서 돈주고 사보기가 아까우면 도서관에서라도 빌려서라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할만 한 책이다.
환경주의자라면 환경을 살리기 위한 채식은 다들 기본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육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책들이 나와 있고 또한 상식적인 차원에서 채식의 건강성에 대해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고 일부 유명 연예인들의 채식실천으로 육식은 나쁘고 채식은 좋은 것이라는 부등식이 분명하게 굳혀져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책은 그렇게 간단하게 채식에게 KO승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가 채식신화의 허구성에 대해 책을 썼다고 해서 반환경론자로 전향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급진적인 환경생태론자이다. 비록 팩트가 아닌 내용과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군데군데 눈에 띄지만 이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진심만큼은 행간 구석 구석 느낄 수 있었고 온우주 생명체를 사랑하는 충정이 책의 발간 동기임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광활한 옥수수 농장의 곡식들이 인간보다 가축 사료로 더 많이 재배되어 지기 때문에 우리가 고기를 멀리해야 옥수수 농장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채식을 포기해야 옥수수 농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듯하다.(물론 저자는 옥수수가 너무 많이 생산되다보니 가축 사료용으로 판로가 개척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과다한 농업이 제1의 원인임을 밝혀주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저자의 몸이 원래 단백질 대사에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수많은 비건들이 꼭 저자와 같이 너무나도 심한 신체적 문제를 겪지는 않기 때문이다. 완전 채식이 좋으냐, 육식이 좋으냐의 문제는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 입에서도 너무나도 다른 말들이 나오기 때문에 판단이 너무 어렵다.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완전 생채식만으로 건강을 누리는 사람이 신기하게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책을 읽기 전에는 육식이 가져오는 환경과 건강의 문제 그리고 대안으로 제시되는 각종 생채식 요법과 단식을 포함한 대체요법에 관해서만 책을 읽었고, 근자에 들어 채식만으로는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필수 지방산과 아미노산의 문제를 접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춰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책은 내가 쌓아왔던 지식체계에 엄청난 도전을 주었다. 상식으로 알아왔던 포화지방의 해악을 완전히 뒤집어놓고, 농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실 지방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인간의 끊임없는 식탐과 과식이 문제이고 또한 채집수렵인이 농업인들보다 훨씬 건강했다는 것은 유골을 통해서도 밝혀지고 있는 팩트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야 얼마든지 밸런스 있게 식탐을 줄이고 소식을 실천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농업이 문제라고 해서 농업을 폐기하고 수렵채집인으로 돌아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무엇을 먹든, 지역 내에서 해결하는 지역적 단위의 자급자족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흙을 파괴하는 일년생 단일 경작물을 지양하고 다년생 작물을 가축과의 공생관계를 만드는 소농을 지향하라고 한다.
이책의 서평에 1점을 준 내용들을 살펴봤다. 이책에서 받아들일 만한 내용은 깡그리 무시하고 맘에 들지 않은 내용만 발췌해서 무조건 비판하는 내용들이 주였다. 그건 책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아닌듯하다. 비판만 하기 위한 책 읽기였다면 그건 시간낭비일 뿐이고 본인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다.
이 책이 말하는 대로 문명의 전환은 분명히 일어나야 한다. 아니 어쩔 수 없이 인류는 강제적으로 현재의 흥청망청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소비사회 문명은 종식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채식이냐 아니냐의 논쟁보다는 문명의 종식 뿐만 아니라 인류의 종식을 향해 치닫는 환경문제를 어떻게 더 알리고 정치화시킬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런 깊은 고민들들을 의제화시켜 눈물로 호소하는 단 한명의 국회의원이라고 배출되었으면 한다. 인류 코앞에 닥친 문제인데 어째서 남의 불 구경하듯하는 국민들과 국회.... 인간의 수명이 500년쯤 된다면 오늘날 같이 살아온 삶을 후회하며 돌이킬 수 있는 기회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 마지막 사족하나,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일방적일 정도로 현미와 콩의 우수한 점만 이야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곡류는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라는 점. 사과같은 열매는 동물에게 먹히기 위해 식물체가 만들어 낸것이고, 그 안의 씨앗은 거의 소화되지 않고 배설되어 번식을 한다. 참외를 먹으면 씨앗은 거의 소회되지 않고 그대로 나와버리는 게 좋은 예이다.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곡류 역시 마찬가지다.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라면 식물체가 소화에 저항하기 위한 화학물질 방어쳬계가 철저할 것이다. 소화되지 못한다면 그건 인간에게 독으로 작용한다. 이 책에서는 콩에 대해서 상당한 할애를 하고 있는데, 피트산이라는 화학물질로 인해 소화되지 않고 오해려 체내 무기질을 끌고 나간다는 것. 그리고 콩의 단백질을 소회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 여하튼 많은 책들을 통해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아는 것은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이런 책을 읽으면 세상에는 아는 게 참 많은 사람도 있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책 내용이 얼마나 사실 혹은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점은 뒤로 밀어 놓고. 판단과 선택의 문제이지 싶은데.
새로운 시각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은 것은 맞다. 새롭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고.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건강하고 오래 사는가, 또 함께 오래 사는가. 내 배가 부르니 다른 사람의 배고픔이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 문제는 이제 지구 차원에서 생명의 차원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고.
다양한 관점, 다양한 생각이 많다고 해도, 또 그런 관점과 입장을 인정한다고는 해도 받아들이고 함께 행동을 해 나가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고 본다. 세상에는 이렇게 외치는 사람도 있구나, 그런 정도.
19 우리는 지금까지 진실을 외면해 왔다. 인간이 하는 행위 중에서 농업이야말로 지구를 가장 많이 파괴하는 행위이며, 농사를 더 짓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농업이 생태계의 전면적인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것, 죽음 없이 가능한 생명은 없으며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다. 21 농업은 우리와 더불어 사는 지구의 다른 생명체에게도 큰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구 자체의 생명 유지 기능을 파괴한다. 즉 모든 것의 운명이 걸려 있는 일이다. 지속 가능한 세상에 살기 위해 우리는 우리 문화의 기본을 이루는 신화 뒤에 어떠한 역학 관계가 숨어 있는지 따져 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근본적인 것까지 건드리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22-23 한 생명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이 죽어야 한다는 생명 현상의 기본적인 방정식을 마침내 깨달은 순간이다. 어떠한 고통과 슬픔이 따르더라도 이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출발점이다. 61 폴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능동적 주체와 수동적 객체로 이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상호 의존적 진화 관계에서는 모든 주체가 객체이며, 동시에 모든 객체가 주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농업이라는 것은 일년생 초본이 나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다.” 65 인간이 식물을 재배하려면 먼저 그 식물이 인간의 필요에 맞춰 자신의 유전자를 변형시킬 용의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수확을 함으로써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식물을 보호하고 보존한다. 수렵·채집인에게 흔히 관찰되는 이런 행동은 결국 적응력이 강하고 다루기 쉬운 식물의 유전자에 변화를 가져온다. 씨앗이 더 커진다든지, 이삭 줄기가 부러지지 않도록 강해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런 식물은 인간이 더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게 변화하는 동시에 인간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72-73 농업을 시작한 것은 인간이 농업의 산물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일년생 초본의 씨에서 나오는 행복의 화학 물질을 우리가 좋아하게 된 것이다. 식물은 1억 년이 넘게 화학 실험을 해 왔다. 포식자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를 보호해 주고 도와줄 대상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입맛을 무디게 하는 카페인에서부터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환각 물질, 생식을 방해하는 호르몬, 치사적인 독에 이르기까지 식물의 화학 무기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그들은 동시에 행복감과 황홀경, 영적 통찰력, 쾌감을 자극하는 효과로 필요한 도움을 유도하는 화학 물질도 분비한다. 이 물질들을 너무 많이 분비하면 잠재적인 동물 도우미를 넘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중독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절한 선을 유지하면 코가 꿰인 동물 도우미는 그 식물을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이고, 그 물질을 더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을 모두 수행해 낼 것이다. 전 세계를 정복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83 흙, 멸종한 생물들, 강. 그들의 죽음이 당신의 음식에 들어 있다. 농업은 육식성이다. 농업이 먹는 것은 생태계다. 생태계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 229 농업은 식량 생산보다는 부의 축적과 더 관련이 깊다. 농업으로 득을 보는 소수가 생겨나 사회의 지배층으로 내내 군림해 왔다. 230-231 문명이 인권과 인류의 행복에 도움이 됐다는 것도 신화에 불과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문명화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를 노예로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 노예의 노동 덕에 지배자는 여가 시간과 호화로운 생활, 철학, 예술을 누릴 수 있다. 민주주의의 고향으로 여겨지는 아테네는 인구의 90퍼센트가 노예였다. ... “노예 제도는 문명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노예 제도는 문명의 유일한 요소라고 할 수도 있다. 노예 제도가 없었다면 문명의 성격이자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재산의 축적, 미래에 대한 준비, 안락함과 우아함에 대한 취향 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예는 문명의 필수 조건이다.” 244-245 우리 조상이 어떤 식생활을 했는지는 다음을 살펴보면 안다. 섬유질이 아니라 고기를 씹도록 만들어진 치아, 반추위가 아니라 방 하나로 구성되어 있고 산을 분비하는 위, 치아를 감싼 사기질, 조상들이 남긴 예술 작품들, 인간이 동물을 잡아먹은 잔해 옆에서 발견되는 동물 도살 도구,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수렵·채집인들이 사냥을 하며 산다는 사실. 254 건강을 위해 인간이 섭취해야 하는 탄수화물의 양은 0이다. 354-355 콩을 먹을 때 실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산업 폐기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밭에서 길러진 콩은 사실 저지방 모범 식품과는 거리가 멀다. 콩은 30퍼센트가 지방이다. 한때 기름을 짜기 위해 콩을 길렀던 적이 있었다. 사람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페인트와 접착제 원료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1913년, 미 농무부는 콩을 식품이 아니라 산업재로 분류했다. 콩에서 기름을 짜내고 나면 지방은 하나도 없는 단백질 덩어리가 남는다. 농산업 분야에서는 이것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1975년 어느 영리한 콩 마케팅 담당자가 말했다. “어떤 상품을 가난한 계층에서 받아들이게 하려면, 부유층이 그 상품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면 된다.” 401 일년생 단일 경작을 하는 농업은 절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인간이 다년생 혼작 환경에 겸손하고 신중하게 참여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다년생 혼작도 실패로 끝날 수 있다. 과도한 개체 수 증가로 방목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져 전 세계적으로 초원이 사막화되어 가는 것이 그 한 예다. 412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은 문화 그 자체다. 우리의 생활 방식을 철저히 바꾸지 않는 한, 갈가리 찢어발겨져 가는 지구를 목격해야 하는 이 상황이 지나면 지옥만이 펼쳐질 뿐이다. 부자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고 어떻게든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지구는 한계가 있다. 하루에 지구를 비추는 햇빛의 양은 정해져 있고, 다른 피해 없이 인간이라는 생물 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생물학적 공동체의 숫자에도 한계가 있다. 모든 것에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고, 우리는 그 선을 존중해야 한다. 416 사회에 강간과 어린이 학대가 만연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이런 짓을 하는 자들 중에는] 이 사회의 존경받는 구성원들도 있다. 이 문화 안에서는 그들도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행위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문화 안의 정상적이라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사랑한다는 사람들을 강간하고 구타한다면, 그들이 연어와 숲과 대양과 지구를 파괴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지 않은가? |
채식의 배신 |
다른분들도 저처럼 제목에 낚일까봐 일부러 리뷰 남김니다.
저자의 문제는 "채식"이 아니라 "극단적인 저칼로리식단 및 가공식품"입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했으니 당연히 몸이 망가지지요. 논리적 사고력 부족과 강한 행동력이 결합했을때 생길 수 있는 안좋은 케이스이고 개인적으로 동정은 가나, 이렇게 논리적 비약이 심한 글로 애먼 독자들에게 화풀이 하면 곤란하죠.
마지막엔 공장식 농업도 싫고 공장식 축산업도 싫으니 수렵/채집생활로 회귀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세계인구가 6백만 정도로 줄어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완벽한 건강상태를 누렸다는 용감한 전제도 빼놓을수 없군요. 예, 영양실조와 병으로 인구가 늘어날 기회가 좀처럼 없던 그시대 분들입니다.
굳이 이 책의 의의를 찾자면, 미국의 비건그룹 중에 반쯤 종교적인 이유로 이상한 식생활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거 정도?
결론: 여러분의 시간은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