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본 감독- 퍼스낼리티와 크리에이티비티에 대한 콤플렉스가 엄청났다. 그 P의 C, C를 위한 P, P에 의한 C, C의 P, 탁월한 조어 능력으로 집착을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그의 것보다 뛰어난 경우는 재앙이었고, 그보다 창조적인 사람의 존재는 천재지변이었다. 그를 배반한 자연의 처사에 충격받았던 것 같다.
제작자가 본 감독-놈들이 괜히 자기들이, 껌처럼 단물만 쏙 빨아낸 후 씹다 버려졌다고 말하고 다니겠나? 자기 운명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지. 하지만 어쩌겠어. 그런 재능은 흔치 않아. 그런 걸 놈들이 멋대로 굴리다가 목이나 매서 낭비하게 둬야겠나? 돼지 목의 진주지.
감독과 가장 많이 마찰을 빚긴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마스터베이션에 돌입하지만 않으면 대체로 사랑스런 친구들이지. 다들 배우가 그런다고 생각하는데, 아니거든. 배우가 하는 건 영역 표시.
영화를 통째로 들어먹기로 감독만 한 자가 없어. 티라노 한 떼가 난동을 부려도 폐허는 남잖아?
감독은 쥐새끼처럼 배에 구멍을 내서 가라앉혀. 영화가 침몰해서, 흔적도 없다고.”
감독이 본 제작자-그는 돈 때문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끊을 수 있고, 동일한 동기에서 동일한 인물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산골 소년과 영화의 기념비적 만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가난한 산골 소년이 상경해서 잊을 수 없는 만남을 가진 건, 영화가 아니라 옷이나 자동차, 세탁기여야 했을 것을. 영화로선 불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각본가의 고뇌-이 바닥에서 마술의 주문이 그거다. 경험을 쌓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쌓아 주려 헌신하는 곳이 여기다.
스폰서가 본 감독-그는 뭐 하나 숨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었죠. 그가 우리들을 돈의 화신으로 보고 절한다는 걸, 우리가 눈치채도 끄떡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를 돈의 노예 취급을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영화를 만들 돈만 생기면 만사 그만이라는 식이죠. 그가 한 번 만들기로 했다면, 무슨 영화건 꼭 만들어질 겁니다.
제작자가 감독에게-아 이거 부조리 양반 나오셨네. 다들 부조리라면 환장하는데, 그게 복조리의 반대말이 아니거든.
배우가 관객에게-관객들은 어느 게 진짠지 몰라 헷갈린다. 그 당혹, 그 경악을 누려라.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 덫에 걸리는 게 맞다. 결국 영화가 가장 큰 범인이다. 당신이 속고 있다면, 모든 게 제대로다.
스태프가 배우에게-주연은 극을 떠받치는 자린데, 떠받들려 지는 자린 줄 안다.
노출과 은폐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로티시즘과 리얼리티의 경계를 넘나들겠다는 게 감독의 목표였다. 감독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해서, 촬영 감독은 잠자코 있었다.
제작자가 본 배우- 스타 중에 배우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배우 중에 스타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니까. 그래서 난 항상 그들을 존경해. 감독보다 더. 그들이 가장 강한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공포를 바치는 거야. 촬영장에 가서 그들을 보면 티라노사우루스가 생각나. 쉬는 시간이면 의자에 앉아 발톱으로 머릴 긁지. 그 발톱이 무뎌지지 않은 한 비위를 계속 맞춰 줘야 해.
스태프가 스태프에게-뭘 모르는 젊은 애들이 말을 옮겨대기 시작하면, 현장은 물 안 넣고 불에 올린 양은 냄비 꼴이다.
영화판 사람이면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거기 현혹돼선 안 된다. 현장의 특수성에 감염돼 버린 꼴이다.
스태프가 감독에게-존나 막장 드라마 가지고 완성도 찾고 진정성 논하고 예술성 부르짖고 있네.
처음엔 설정의 허점을 두루뭉수리로 만들려고 관념적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생각하니, 허점이 많을수록 헛소리를 길게 할 수 있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 같다. 아, 맞다, 일부러, 바로 그거다. 왜 감독은 그렇게 했을까? 하고 의문을 품게 하는 영화, 사실은 그게 다 감독의 의도였던 것이다, 라고 하면 게임 끝이다. 모든 말 안 되는 영화를, 말 안 되면 안 될수록 예술로 만들어주는 공식. 감독의,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의도. 씨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