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나를 지키겠다며.”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맹세가 강철보다도 무거운 족쇄가 되어 묶여버리고 말았다. 내 존재를 확실히 인정해버리면 다시 피투성이로 괴로운 현실을 살아가야만 한다.
“미치고 싶지, 류이.”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해버렸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금도 제정신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망가지지 않았어.”
망가지고 싶다고 바랐기 때문에 모순된 바람을 입에 담는다. 지치고 지쳤는데도 제정신을 잃지 못해서, 새카만 절망의 감옥에 갇혀 있다.
하지만 평온한 광기를 불러들이지 못하는 건 류이가 강하기 때문이야. 아직 이 세계를 내버릴 수 없다고― 내버리고 싶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미안. 나는 류이가 바라는 안식을 주지 못해.”
괴롭고 고통스런 이 현실로 돌아와 주길 바라.
“류이, 약속해줬잖아?”
“―.”
“변함없는 충성을 주겠다고. 기뻤어. 그런 굉장한 말, 들은 적이 없었거든. 나, 내가 어느 나라 공주님이라도 된 것 같았어. 류이는 진짜 기사님이니까.”
듣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류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엘이 서두르라는 듯이 등 뒤에서 초조하게 어슬렁거리며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기사의 맹세로, 의리의 피를 붓고, 충성과 용기의 횃불을 피우고, 불멸의 의지를―.”
“히비키!”
그는 듣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듯 외치더니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나를 지켜준다면서. 류이가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나는 약하니까, 혼자서는 밤을 못 보내.”
계속해서 말하자 류이는 어깨를 떨었다. 무척 거친, 가라앉은 눈길로 피가 배어날 만큼 입술을 깨문다.
“이제 안 돼? 함께 있기 싫어졌어?”
비겁한 말투로 류이의 마음을 흔들 수밖에 없다.
나는 똑똑한 어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어린애도 아니었다.
“나, 혼자선 무서워. 옆에 있어 줘.”
“―.”
한순간, 류이는 격렬한 분노가 깃든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바로 지금, 시선이 마주쳤다!
“류이랑 한 번 더 만나고 싶어서 여기 왔어. 류이는, 만나고 싶지 않았어?”
무척 무서운 눈길이었다. 평소에 보였던 감싸주는 듯한 다정함은 한조각도 찾아볼 수 없다. 저주하는 듯한 감정이 깃든 혹독한 눈동자다.
금세라도 베일 듯한 착각이 들어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덕분에 다음에 할 말이 떠올랐다.
“나를 원망해. 무척 화가 났잖아, 때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났잖아. 어째서냐고, 물어봐야 해. 왜냐면 류이는― 나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니까.”
고개를 돌리는 류이의 뺨을 가로막았다.
레임이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움직일 수 없다.
“그만해.”
“그만 안 해.”
즉답하자 류이는 울컥한 태도로 두 팔을 붙잡았다. 짓눌려 버릴 듯이 강한 힘이었다. 뼈가 삐걱이는 느낌이 들어 얼굴을 약간 일그러뜨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미안.”
“사과하지 마!!”
후려치는 듯한 목소리로 거절당했다.
“지켜야만 하는 너를 원망하라니!”
류이의 눈에 그제야 커다란 감정의 소용돌이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달빛 눈동자가 일렁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