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재판소는 대법원과 함께 최고사법기관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 국가에서 이들 최고사법기관은 ‘하급심 판결의 교정’이라는 역할도 수행하지만, 최고국가기관의 하나로서 국가의 중대사에 대해 판결을 통해 정책판단을 내리는 ‘정책결정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성향을 분석해내고, 이것이 한국사회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고 앞으로 헌법재판소가 한국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규명하는 것은 헌법기관의 조직, 권한, 역할을 다루는 헌법학에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가진다.
6월 항쟁 이후 우리 헌정사에서 최초로 여야 대표간의 정치회담을 통해 1987년에 탄생한 제6공화국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서 창설된 것이 바로 헌법재판소이다. 어두웠던 헌정사를 반성하고 외국의 헌법통제 제도를 면밀하게 검토한 후 1988년 8월 5일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되고 9월 1일 시행됨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발족된 것이다.
이러한 제6공화국 헌법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정치활동 금지와 신분보장 규정을 두고 있어 심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있으며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재판관 9명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나머지 3인은 대통령이 지명한 자를 임명하고 있으나, 이 같은 임명 방법은 임명·선출자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애당초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할 당시 여당은 헌법재판소를 종전의 헌법위원회 정도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상임재판관 3인과 비상임재판관 6인을 두는 형태를 고수했었다. 그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작동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가 거세지자 야당과 합의하여 상임재판관을 6인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설립 당시 대법원 등으로부터 대법원 위에 또 다른 최고사법기관을 두는 ‘옥상옥’(屋上屋)이 될 것이라는 등의 거센 반발을 받으면서 설립된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우려와는 달리 많은 위헌결정들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을 톡톡히 해왔다. 이에 약간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제2기 헌법재판소의 주요 판결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 재판부의 판결성향을 분석하고,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헌법재판의 기틀을 다지는 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규명해내는 일은 꼭 필요한 학문적 과제가 아닐 수 없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본 주제의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88년 9월에 출범한 제1기 헌법재판소가 우리나라에서 헌법재판의 단단한 초석을 다졌다고 한다면, 1994년 9월부터 2000년 8월까지 활동한 제2기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단단한 초석 위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위헌결정을 통해 헌법재판의 외연을 확대한 헌법재판소라고 개략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제2기 헌법재판소에서부터 여러 정치적 사건에도 헌법재판소가 과감하게 개입하기 시작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즉, 국가의 중요 정책결정이 국회나 행정부의 정치과정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사법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의 맹아가 제2기 헌법재판소에서 발견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2기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법사(司法史)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대한민국의 정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들을 내림으로써 우리의 정치사에서도 중요한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각 재판관들의 판결성향은 실질적으로 누구에 의해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었는가의 점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994년에서 2000년까지 활동한 제2기 헌법재판소 재판부 전체의 판결성향을 분석하기 위해 우선 그 재판부를 구성하는 재판관들 개개인의 판결성향을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저마다 다양한 세계관, 가치관, 사회관, 국가관을 가지고 판결에 임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개 재판관들의 판결성향이 모여 그 재판부를 구성하는 재판부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재판관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것이 제2기 헌법재판소 판결성향 분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제2기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들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제2기 헌법재판소 재판부의 분야별 판결성향을 밝히는 작업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재판부가,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많은 위헌결정으로 체재 변화의 진보적 판결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판결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가능성이 농후한 정치분야에 있어서는 위헌결정을 자제함으로써 보수적 판결성향을 보이는 이중적 성격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우선 제2기 헌법재판소 재판관 개개인의 판결성향을 그들이 가담한 의견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고 이 개개인의 판결성향이 그들의 성장 배경, 경력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 것인지를 규명해 본다. 이것은 어떤 경력과 성장 배경의 인사들을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으로 뽑아야 국민 각계 각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를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런 재판관들로 이루어진 제2기 헌법재판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별로 전체적으로는 어떤 판결성향을 보이는지를 귀납해 봄으로써, 전체 제2기 헌법재판소의 판결성향을 분석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제2기 헌법재판소의 판결성향이 판결의 사회적 파장을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규명해 본다.
---「제1절. 제2기 헌법재판소 탄생」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