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깊은 새벽이 올 때면 이따금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러 가곤 했다. 흔들리는 모빌을 보며 여러 날 숨죽여 울었다. 엄마의 죽음은 절대 사고 같은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제쯤 알 수 있었다. 그 많은 돈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를. 어째서 남편이 날 장지까지 오지 못하게 했는지를. 남편은 내가 그것들에 대해 추궁할 때면, 이따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 눈은 엄마를 수술실로 들여보낼 때 그가 지었던 눈빛과 조금의 차이도 없이 똑같았다. --- p.14
그 숫자를 되뇌자마자 캐리어를 들고 뛰었다. 어깨에 들린 보스턴백은 어느새 내려와 손목 근처에서 덜렁거렸다. 원래라면 그가 도착하기까지 최소 20분이 남아야 했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 대기음이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어디 있어?” 남편이 불쑥 물었다. 그의 목소리 뒤로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눌렀다. --- p.21
“내 애 어딨어.” 여자가 눈을 깜빡였다. “네 애를 왜 나한테서 찾아?” 그녀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내 팔을 밀쳤다. 쓰고 있던 모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여자를 다시 붙잡으며 소리쳤다. “내 애 당신이 데려갔지. 오늘 계속 내 주위 맴돌았잖아.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여자는 그런데도 못 들은 척 장 본 봉투를 꼼꼼히 묶을 뿐이었다. 나는 여자의 몸을 다시 한 번 잡아챘다. 그녀의 상의가 벌어지며 가슴팍이 드러났다. 여자는 그것을 가리지도 않은 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니야. 웬 남자가 갓난애 하나 데리고 가는 건 봤지.” 여자가 검지를 들어 저 먼 곳을 가리켰다. --- p.106
“함정이야.” 나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손이 떨렸다. 아이를 찾기도 바쁜데 이런 일에 묶여 있을 생각은 없었다. 눈을 굴려 책상 한쪽에 놓인 차 키를 보았다. 지금 서 있는 곳은 경찰서 출입구와 그리 멀지 않았다. 차가 있다면 도망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당신 때문에 우리 애가 죽을 거야.” 나는 진목을 향해 말했다.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침묵이 흘렀다. 그의 표정은 아까 나를 달래 경찰서로 오려던 때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