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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시작은

세계의 끝과 시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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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406g | 128*188*23mm
ISBN13 9788950988470
ISBN10 895098847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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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좋아하는 계절이다.
달이 예뻐 보이고, 첫사랑과 만난 것도 가을이었다.
철학개론 강의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샤프펜슬로 다이어리에 그림을 그렸다.
매끄러운 뺨, 날렵한 턱선, 모양 좋은 귀, 조그마한 입술.
첫사랑의 얼굴은 9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얼굴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 서 있는 모습, 밤바람에 나부끼던 옷의 주름까지도.
--- p.12

남자는 그녀에게 손이 닿을 정도까지 다가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남자가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고 입을 크게 벌렸다.
“안 돼!”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남자가 불에 덴 것처럼 고개를 휙 돌려 이쪽을 보았다.
도노를 향한 눈빛에 적의는 없었고, 그냥 놀란 듯했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의 눈이 붉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벌린 입에는 송곳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뾰족한 이 두 개가…….
‘엄니?’
끼릭 하고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남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 p.31

처음 만난 그녀에게 뭘 전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뭔가 말해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다. 결국 입에서 나온 것은 단 한마디였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썹을 살짝 내리며 약간 서글프게 말했다.
“만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낫겠죠.”
--- p.34

9년 전과 똑같았다. 망설이면 늦는다. 다짜고짜 달렸다.
예의고 뭐고 따질 심정이 아니었다. 그녀가 멈추지 않으면 팔을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도노가 말을 걸기 전에 돌아보았다.
어깨에 못 미치는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지척에서 눈이 마주쳤다.
“……당신은.”
도노를 보고 그렇게 말한 목소리도.
그때와 똑같다. 기억난다.
머리는 짧아졌고 검은 테 안경을 꼈지만 틀림없이 기억 속 ‘그녀’다.
--- p.56

“선배…… 이거.”
“우와…….”
루미놀 검사를 하고 싶다고 도노가 말을 꺼낸 시점에서 이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겠지만, 지나쓰도 사쿠도 얼굴이 굳어졌다.
도노가 지나쓰에게 분무기를 받아 조금 위쪽에 용액을 뿌리자 담 위쪽에도 물보라가 튄 것 같은 흔적이 나타났다.
얼핏 봐서는 모르도록 핏자국을 깨끗이 닦아냈지만, 루미놀에 반응할 정도로는 혈액 성분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몇 군데 더 뿌려본 결과 핏자국의 범위가 아주 넓다는 걸 알았다.
사람이 이 정도로 피를 흘리고도 살아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틀림없다. 여기는 살인 현장이다.
--- p.79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할 뿐이야. 미움을 살 짓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그러니까 사건이 해결돼도 말없이 사라지지는 마.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만이라도 줘. 몇 년이 걸려도 상관없어.”
아카리에게는 짧은 시간이겠지만, 도노는 일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9년 내내 좋아했어. 앞으로도 평생 좋아할 거야.”
--- p.260

뭔가 멋진 말을 남길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럴 시간은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입에서 뭔가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뭐, 어쩔 수 없지. 후회는 안 하지만.’
어젯밤이 생각났다. 딱 한 번 느꼈던 그 감촉이.
……역시 입에다 할걸 그랬나.
--- p.403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하나무라 도노는 오늘도 한 여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어릴 적, 보름달 아래 단 한 번 스치듯 만난 아름다운 소녀다. 그녀의 신비로운 눈동자에 속수무책으로 빠진 도노는 소녀를 자신의 운명이라 믿고, 생김새를 잊지 않기 위해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노의 동네에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현장을 찾아간 도노는 첫사랑 소녀와 우연히 재회한다. 기이하게도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은 것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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