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해 이 정부는 현재의 아픔을 치료하지 못했고, 미래를 위한 준비에도 실패했다. 이 판국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대체 무슨 의도인지 가늠조차 어렵다. 아직 2년이 남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그럴 거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화려하게 등장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총선에 나가 4선에 도전한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인 그곳에서. 그 총선이 끝나면 4년 차 대통령은 출구전략을 짜기 시작할 것이다. 전 세계가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이미 3년을 허비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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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을수록 이 젊음, 참 쓰다. 배워야 중간이라도 간다는데, 배움에 돈이 든다. 고등학교 졸업자 중 4분의 3이 대학에 가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등록금 낼 돈이 모자라 빚을 낸다. 대선 때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낮추겠다던 대통령은 하는 척하더니, 그 뒤로 별말이 없다. 없던 장학금이 생기긴 했는데 득을 봤다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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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이 단어가 한국 사회의 중심에 놓인 지 약 10여 년이 지났다. ‘큰일 났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취업 전쟁은 최악을 향해 간다. 청춘을 즐기긴커녕 4년 내내 술 한잔 편하게 못 마시고, 스펙을 쌓아도 명함 한 장 찍기가 쉽지 않다. 취업 재수생, 삼수생이 쌓여가는데 일자리는 제자리다. 정규직 전환이 보장되지 않는 인턴 자리 하나에 100명이 몰려 경쟁한다. 실패도 한두 번이라야 경험이지 수십, 수백 번 원서를 내고, 면접을 봐도 안 되면 ‘나는 쓰레기’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자괴감과 좌절, 부끄러움이 20대를 휘감고 있다. 숫자만 봐도 어느 정도 답은 나온다. 우리나라의 최근 연간 신규 고용 규모는 약 40만~50만 명 수준. 그런데 대학졸업자는 50만~55만 명. 이 중 절반이 취업 재수를 하니, 다음 해엔 80만 명이 된다. 회사에 다니다 취업 시장에 새로 뛰어드는 ‘올드루키(경력직 신입사원)’까지 포함하면 대략 100만 명. 삼성이나 현대차가 고용 1만~2만 명 더 늘리겠다고 떠들어봐야 ‘절반이 허탕을 쳐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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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약 200만 명에 육박한다. 초고속으로 늘고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취업난에 떠밀려 비자발적 프리터족이 된 20~30대다. 아르바이트로도 먹고살 만하다면 2,000만 명인들 어떻겠나. 그러나 아르바이트는 소득의 절대액 자체가 작다. 시급은 최저임금과 붙어 있고, 주어진 근로시간도 짧다. 더 큰 문제는 노동의 연속성이다. 사람은 벌이가 일정해야 계획이란 걸 세운다. 거기에 맞춰 저축을 하고, 소비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버는 돈이 없어지거나 줄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장기간 프리터로 살게 되면 불안정한 생활이 노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흙수저’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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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자금은 2억 5,000만 원이다. 주택 마련에 가장 큰 돈이 들어간다. 남자의 초혼 연령은 이미 32세를 넘겼다. 결혼이 늦어지면 돈이라도 좀 모았어야 하는데 어디 그게 쉽나. 늦은 취직 탓에 함께 늦춰진 결혼인데 은행 잔고가 부실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셋값은 이미 천정부지. 우리나라 수도권 주택의 전세 가격은 평균 2억 원을 넘어섰다. 그래도 월세론 도저히 돈을 불릴 자신이 없으니 전세에 목을 맨다. 어쩔 수 없이 빚을 내 전셋집을 구한다. 소득 정체와 꽉 막힌 재테크 수단을 감안할 때 20~30대가 빚을 안고 출발하는 건 100미터 달리기에서 5초쯤 후에 출발하는 것과 같다. 다른 조건이 같을 때 부모에게 1억 원을 물려받은 사람과 1억 원의 대출을 안고 출발한 사람은 끝까지 부의 순위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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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가 ‘너무 힘들다’고, ‘이건 좀 심하다’고 아우성을 쳐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힘들고 가난하다. 사회의 틀은 이미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그들에겐 바꿀 의지가 없고, 20~30대에겐 바꿀 힘이 없다. 복지나 연금만 봐도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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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야심 차게 도입한 기초연금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하는 바람에 젊은 세대만 더 큰 손해를 보게 됐다. 그럼에도 20~30대의 대부분은 이 나쁜 음모를 잘 모른다. 이는 기성세대 개개인이 탐욕을 부린 결과가 아니다. 애초에 기성세대가 더 많은 몫을 챙기도록 설계된 정치의 산물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만 해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막혔다. 연금 보험료를 세금처럼 여겨 인상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탓도 있지만 애초에 정치권은 ‘미래를 위해 보험료를 더 내자’고 설득할 의지가 없었다. 정치인이 그런 소리 했다간 ‘표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말라’며 당내에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모든 선거에서 20~30대의 투표율은 낮고, 50대 이상의 투표율은 높다. ‘한 번 더 당선’이 절대 사명인 국회의원이 젊은 세대와 별로 친하지 않은 이유다.
--- p. 20~21
사방이 적이다. 그러나 모든 걸 기성세대의 탓으로 돌리기엔 우리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다. 무식한데 공부하지 않는다. ‘시킨 일만 하고, 판단에 서툰 세대’라 불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답을 찾기보단 답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스스로 면제시키면서 기성세대의 논리와 타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새로움은 없고, 창조적이지도 않다. 동시에 서글플 정도로 이기적이다. 눈과 귀를 막고, 타인엔 관심이 없으면서 정작 본인은 위로받길 원한다. 그러니 연대는 역사책에서 본 일이다. 그러면서 그런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변명한다. ‘거지 같은 세상’이라면서 세상을 바꿔볼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고, 기성세대를 욕하면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바란다. 이런 이중성은 지금 20~30대가 가진 가장 뼈아픈 약점이다. 꼰대들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도 ‘노오력이 부족해?’라고 비꼬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이유다. 헬조선의 제작자는 아버지였을지 모르나, 주연은 확실히 우리 자신이다. 늦지 않았다. 첫걸음은 20~30대가 마주한 이 땅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알아야 싸운다. 알아야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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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심을 키우자. 개인부터 부모에게 기대지 말고, 실존을 고민하자. 그리고 기성세대가 내려놓은 정의(定義) 대신 우리만의 길을 찾자.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나는 그 길이 사회의 ‘정의(正義)’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애썼던 기성세대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지점이다. 여전히 이 사회는 불법과 탈법이 용인되고, 기회의 불평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빈부 격차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부의 대물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많은 영역에서 승자가 독식하고, 패자는 재도전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 ‘버림받은 영혼’이 곳곳을 떠도는데, ‘함께 사는 사회’는 여전히 멀리 있다. 적어도 내 자식은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 공정한 룰 속에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더 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만연한 각종 격차와 갈등을 해결할 적절한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빨리 뛰는 사회’에서 ‘함께 걷는 사회’로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할 일이 태산 같다. 사람도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촉박하다. 재차 말하지만 지금은 주저앉아 투정만 할 때가 아니다.
--- p. 402
힘을 모으자. 분자화된 삶은 늘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젊은 세대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닥치고 있는 삶’은 때로 가장 나쁜 선택이다. 반성해야 한다. 막연한 반감과 의미 없는 푸념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결국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간다. 이기심부터 던지자. 공통의 목표도, 조금의 연대 의식도 없으면서 모든 걸 나라 탓, 사회 탓으로 돌려봐야 바뀌는 건 없다. 떳떳하지도 않다. ‘나의 취업’이 아닌 ‘우리의 취업’을 고민하자는 얘기다. 지금은 ‘돈도 꿈도 없는 청춘’이 서러워서가 아니라 ‘이 더러운 청춘을 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을 모아 싸워야 한다. 그게 정치판이든 SNS든 길거리든 상관없다. 뭐라도 해봐야 한다. 페이스북 한다면서 맛집·연예인 얘기만 포스팅하지 말고, 사회의 어젠다를 공유하는 일에도 에너지를 좀 쏟자. 길도 스스로 찾자.
--- p. 402~403
언제부터 우리의 목표가 취업이고, 집이었던가? 왜 정상적인 삶의 척도가 정규직이 됐고, 돈이 없으면 스스로를 ‘루저’라 칭하게 된 건가? 한 번 사는 인생을 모두 화폐로 환원하는 천박한 논리의 노예로 살면서 과연 우리가 놓친 건 없는가? 성공하라고, 도전하라고 등 떠밀고 몰아세우는 기성세대를 그토록 부정하면서, 왜 우리 스스로는 내 친구를 못 이겨 안달이고, 동료를 잡아먹지 못해 고뇌하는가? 길이 좁아졌다고 안 갈 길이 아니다. 좁아서 못 들어갈 듯하다면, 다른 길을 찾는 게 순리다.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습관, 나의 현재를 사랑하는 습관, 나는 이 땅의 20~30대가 이런 습관을 통해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성세대는 듣고도 이해 못할 그런 길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 p. 404~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