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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청년 시절 1889~1899
1889년 5월 13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21 1889년 5월 27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23 1889년 9월 27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25 1889년 12월 31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27 1890년 1월 (날짜 불명),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30 1890년 7월 20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39 1890년 8월 9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42 1891년 4월 20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47 1891년 11월 7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50 1892년 7월 19일,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62 1892년 12월 14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64 1894년 3월 9일, 도쿄 혼고구 기쿠치 겐지로에게 67 1894년 9월 4일, 도쿄 혼고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70 1895년 4월 16일,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간다 나이부에게 73 1895년 5월 26일,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75 1895년 12월 18일,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79 1896년 6월 10일,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83 1897년 1월 (날짜 불명),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84 1897년 4월 23일,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86 1899년 12월 11일,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다카하마 교시에게 90 2부 · 영국 유학 시절 1900~1902 1900년 9월 27일, 기선 프로이센호 나쓰메 교코에게 95 1900년 10월 23일, 파리 나쓰메 교코에게 98 1900년 11월 20일, 런던 웨스트햄스테드 후지시로 데이스케에게 101 1901년 1월 22일, 런던 캠버웰뉴로드 나쓰메 교코에게 103 1901년 2월 20일, 런던 캠버웰뉴로드 나쓰메 교코에게 108 1901년 4월 9일, 런던 캠버웰뉴로드 마사오카 시키ㆍ다카하마 교시에게 111 1901년 4월 20일, 런던 캠버웰뉴로드 마사오카 시키ㆍ다카하마 교시에게 121 1901년 4월 26일, 런던 투팅그래버니 마사오카 시키ㆍ다카하마 교시에게 134 1901년 6월 19일, 런던 투팅그래버니 후지시로 데이스케에게 143 1901년 9월 12일, 런던 클랩햄코먼 데라다 도라히코에게 145 1901년 12월 18일, 런던 클랩햄코먼 마사오카 시키에게 148 1902년 3월 10일, 런던 클랩햄코먼 나쓰메 교코에게 151 1902년 3월 15일, 런던 클랩햄코먼 나카네 시게카즈에게 154 1902년 4월 17일, 런던 클랩햄코먼 나쓰메 교코에게 158 1902년 12월 1일, 런던 클랩햄코먼 다카하마 교시에게 161 3부 · 도쿄대 교수 시절 1903~1906 1903년 6월 14일, 도쿄 혼고구 스가 도라오에게 167 1903년 7월 2일, 도쿄 혼고구 스가 도라오에게 170 1904년 6월 18일, 도쿄 혼고구 노무라 덴시에게 174 1905년 1월 1일, 도쿄 혼고구 노마 마사쓰나에게 176 1905년 2월 13일, 도쿄 혼고구 미나가와 세이키에게 178 1905년 6월 27일, 도쿄 혼고구 노무라 덴시에게 179 1905년 7월 15일, 도쿄 혼고구 나카가와 요시타로에게 182 1905년 9월 11일, 도쿄 혼고구 나카가와 요시타로에게 185 1905년 9월 16일, 도쿄 혼고구 나카가와 요시타로에게 189 1905년 9월 17일, 도쿄 혼고구 다카하마 교시에게 191 1905년 11월 2일, 도쿄 혼고구 노무라 덴시에게 193 1905년 11월 9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194 1905년 12월 3일, 도쿄 혼고구 다카하마 교시에게 196 1905년 12월 31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198 1906년 1월 9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01 1906년 2월 6일, 도쿄 혼고구 노무라 덴시에게 205 1906년 2월 13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07 1906년 2월 17일, 도쿄 혼고구 아네사키 조후에게 211 1906년 4월 3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13 1906년 6월 6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14 1906년 7월 2일, 도쿄 혼고구 다카하마 교시에게 216 1906년 7월 24일, 도쿄 혼고구 나카가와 요시타로에게 220 1906년 9월 5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23 1906년 10월 10일, 도쿄 혼고구 와카스키 사부로에게 225 1906년 10월 20일, 도쿄 혼고구 미나가와 세이키에게 227 1906년 10월 21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29 1906년 10월 21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33 1906년 10월 23일, 도쿄 혼고구 가노 고키치에게 236 1906년 10월 23일, 도쿄 혼고구 가노 고키치에게 241 1906년 10월 26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46 1906년 10월 26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48 1906년 11월 9일, 도쿄 혼고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51 1906년 11월 16일, 도쿄 혼고구 다키타 조인에게 253 1906년 12월 22일, 도쿄 혼고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57 4부 · 아사히신문사 시절 1907~1912 1907년 1월 27일, 도쿄 혼고구 쇼노 소노스케에게 263 1907년 3월 11일, 도쿄 혼고구 사카모토 셋초에게 265 1907년 3월 23일, 도쿄 혼고구 노가미 도요이치로에게 269 1907년 7월 21일, 도쿄 혼고구 노가미 도요이치로에게 271 1907년 8월 5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73 1907년 8월 6일, 도쿄 혼고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75 1907년 8월 15일, 도쿄 혼고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77 1907년 9월 2일, 도쿄 혼고구 구로야나기 가이슈에게 280 1908년 7월 1일, 도쿄 우시고메구 다카하마 교시에게 282 1908년 8월 (날짜 불명), 도쿄 우시고메구 시부카와 겐지에게 284 1908년 10월 20일, 도쿄 우시고메구 가케 마사후미에게 286 1908년 12월 20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88 1909년 2월 7일, 도쿄 우시고메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91 1909년 4월 24일, 도쿄 우시고메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93 1909년 7월 6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로야나기 가이슈에게 295 1909년 8월 1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이다 마사요시에게 297 1909년 11월 28일, 도쿄 우시고메구 데라다 도라히코에게 299 1910년 2월 3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베 요시시게에게 303 1910년 6월 23일, 도쿄 고지마치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06 1910년 7월 3일, 도쿄 고지마치구 도가와 슈코쓰에게 307 1910년 9월 11일, 시즈오카현 슈젠지 나쓰메 후데코ㆍ쓰네코ㆍ에이코에게 309 1910년 10월 31일, 도쿄 고지마치구 나쓰메 교코에게 311 1910년 12월 13일, 도쿄 고지마치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13 1910년 12월 14일, 도쿄 고지마치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14 1911년 1월 6일, 도쿄 고지마치구 미야 히로시에게 316 1911년 2월 2일, 도쿄 고지마치구 나쓰메 교코에게 318 1911년 2월 10일, 도쿄 고지마치구 나쓰메 교코에게 320 1911년 2월 21일, 도쿄 고지마치구 후지하라 료지로에게 322 1911년 2월 24일, 도쿄 고지마치구 사카모토 셋초에게 324 1911년 4월 13일, 도쿄 고지마치구 후지하라 료지로에게 326 1911년 7월 31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28 1911년 10월 4일, 도쿄 우시고메구 유게타 세이이치에게 330 1911년 10월 25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32 1912년 5월 19일, 도쿄 우시고메구 하시구치 고요에게 335 1912년 6월 17일, 도쿄 우시고메구 하야시바라 고조에게 337 1912년 6월 18일, 도쿄 우시고메구 니시하라 구니코에게 339 1912년 8월 12일, 도쿄 우시고메구 모리나리 린조에게 340 1912년 10월 12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베 지로에게 342 1912년 12월 4일, 도쿄 우시고메구 쓰다 세이후에게 344 5부·만년 1913~1916 1913년 1월 12일, 도쿄 우시고메구 모리나리 린조에게 349 1913년 10월 5일, 도쿄 우시고메구 와쓰지 데쓰로에게 350 1913년 11월 21일, 도쿄 우시고메구 다카하라 미사오에게 353 1913년 11월 25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56 1913년 12월 8일, 도쿄 우시고메구 쓰다 세이후에게 358 1913년 12월 21일, 도쿄 우시고메구 무샤노코지 사네아쓰에게 360 1914년 1월 5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카기 고헤이에게 362 1914년 1월 7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이즈미 마가네에게 364 1914년 1월 13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로야나기 가이슈에게 366 1914년 3월 29일, 도쿄 우시고메구 쓰다 세이후에게 368 1914년 4월 24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쓰오 간이치에게 370 1914년 5월 25일, 도쿄 우시고메구 요모타 요시오에게 371 1914년 6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기무라 겐조에게 372 1914년 6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요모타 요시오에게 374 1914년 7월 7일, 도쿄 우시고메구 기타지마 에이이치에게 375 1914년 8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야마모토 쇼게쓰에게 377 1914년 10월 27일, 도쿄 우시고메구 나카 간스케에게 379 1914년 11월 9일, 도쿄 우시고메구 요시나가 히데코에게 381 1914년 11월 14일, 도쿄 우시고메구 하야시바라 고조에게 382 1914년 12월 27일, 도쿄 우시고메구 요시나가 히데코에게 384 1915년 1월 25일, 도쿄 우시고메구 후지모리 히데오에게 385 1915년 2월 15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로야나기 가이슈에게 387 1915년 4월 22일, 도쿄 우시고메구 도미사와 게이도에게 389 1915년 5월 3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소다 다카에게 391 1915년 5월 16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소다 다카에게 393 1915년 6월 15일, 도쿄 우시고메구 무샤노코지 사네아쓰에게 396 1915년 7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다 요시코에게 399 1915년 8월 9일, 도쿄 우시고메구 도쿠다 슈세이에게 402 1916년 1월 13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다 요시코에게 404 1916년 2월 19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407 1916년 7월 19일, 도쿄 우시고메구 오이시 다이조에게 409 1916년 8월 5일, 도쿄 우시고메구 와쓰지 데쓰로에게 412 1916년 8월 21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메 마사오ㆍ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415 1916년 8월 24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메 마사오ㆍ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418 1916년 9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423 1916년 11월 6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426 1916년 11월 10일, 도쿄 우시고메구 기무라 겐조에게 429 옮긴이의 말 431 나쓰메 소세키 연보 437 |
저나쓰메 소세키
관심작가 알림신청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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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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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인생의 여로를 아직 반도 지나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숨이 차니 자네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도 한심하다 싶지만, 이 또한 misanthropic 병이니 어쩔 도리가 없군. … 욕망의 바다에는 파도가 험해 언제 기슭에 가닿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그만두자, 그만두자, 눈멀고, 귀먹고, 육체는 재가 되어버려라. 나는 무미, 무취의 기묘한 것이 되어…
--- 「1890년 8월 9일, 마사오카 시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나 한번 굴러 원숭이 되고 나 또 한번 굴러 신이 되리. 나의 지나온 30년이 미간에 새겨져 있으니, 거울 속 내가 어찌 나를 속일 수 있으랴. 원숭이의 동족인지 신의 친척인지는 모름지기 스스로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가늠하는 것이 제일이라. 나는 내 부모의 묘비명이고 내 자식은 내 전기의 초록抄錄일지니. 인간의 얼굴을 하고 두 발이 달린 말은 진선미眞善美를 태우고 무한한 공간을 달린다. 내가 달리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떠나 잘 달리는 다른 말을 찾으리라. --- 「1897년 1월 (날짜 불명) 마사오카 시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러고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동네 산책을 나간다. 거리에 나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키가 아주 크다. 거기다 귀염성이라곤 없는 면면들뿐. 이런 나라에서는 사람 신장에 세금이라도 매겨야 조금 더 검소한 작은 동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맞은편에서 유독 키 작은 녀석이 온다. 잘됐군, 생각하며 스쳐 지나는데 나보다 5센티는 크다. 이번에는 얼굴색 묘한 웬 난쟁이가 다가오는가 싶었는데, 웬걸, 이 몸의 그림자가 거울에 비친 것이었다. --- 「1901년 4월 20일, 마사오카 시키·다카하마 교시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백년 후 박사 수백은 흙이 되고 교수 수천은 진흙이 되어 사라질 걸세. 나는 백대까지 내 글을 전하고자 하는 야심가라네. … 나는 1년, 2년, 혹은 10년, 20년 사이의 평판이나 광명, 악평이 전혀 두렵지 않다네. 왜냐하면 나는 가장 찬란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일세. 그들을 안중에 둘 만큼 소심한 사람이 아니네. 그들에게 내 본모습을 보여줄 만큼 멍청한 사람도 아니고, 그들에게 정체를 간파당할 만큼 얕은 사람도 아니지. 나는 주위의 칭찬을 구하지 않고 천하의 신앙을 구한다네. 천하의 신앙을 구하지 않고 후세의 숭배를 기대하지. 이런 희망을 가질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위대함을 느낀다네. 자네도 나와 같은 사람일세. 자네의 위대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때 이런 인과는 화로 위 눈처럼 녹아 사라질 걸세. 부디 힘쓰시길 바라네. 사람이 진보하겠다는 신념을 품고 행동할 때 그 귀함은 신을 초월하고, 그때 비로소 천지를 뒤덮을 자아를 깨닫게 된다네. 이건 천자님의 위광으로도 얻지 못하는 것이지. --- 「1906년 10월 21일, 모리타 소헤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저는 다만 홀로 갈 데까지 가다가 이윽고 도달한 곳에서 쓰러질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아무런 느낌이 없지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분명치 않아요. 나의 삶은 하늘에서 부여한 것인데, 그 삶의 의의를 절절히 음미하지 않는 건 아까운 일입니다. … 하늘이 부여한 목숨을 있는 힘껏 이용해서 스스로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지 않는다면 천의를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결심하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 「1906년 10월 23일, 가노 고키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단순히 미적이기만 한 글은 옛 학자가 혹평했듯 그저 한문자閑文字에 지나지 않는다네. 하이쿠는 이 한문자 속을 소요하며 기뻐하고 있지. 하지만 그렇게 작은 세계에서 뒹굴면서는 이 크나큰 세상을 조금도 바꿀 수 없어. 게다가 크게 바꾸어야 할 적이 사방 가득 있다네. 문학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자라면 단순히 아름다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터. … 잘못되었을 때 신경 쇠약에 걸리든 미치광이가 되든 감옥에 갇히든 개의치 않겠다는 각오 없이는 문학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네. 문학자는 태평하고 초연하고 아름답게 세간과 동떨어진 작은 세계에만 머무른다면 모를까, 넓은 세계로 나온 이상 단지 유쾌함을 얻기 위함이라는 둥 그런 말이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되네. 자진해서 고통을 찾아 나서기 위함이 아니면 안 되는 걸세. --- 「1906년 10월 26일,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 풀과 나무가 아름다워 보입니다. 특히 요즈음 봄볕은 더할 나위 없이 좋더군요. 저는 그런 것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1914년 3월 29일, 쓰다 세이후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오늘부터 매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곧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저는 이 긴 편지를 까닭 없이 씁니다. 한없이 이어져 저물 줄 모르는 긴긴 하루의 증거로서 씁니다. 그런 기분에 잠긴 저를 두 사람에게 소개하기 위해 씁니다. 또한 그 기분을 스스로 음미해보기 위해 씁니다. 해는 깁니다. 사위는 매미 소리에 파묻혔습니다. 이상. --- 「1916년 8월 21일, 구메 마사오·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서두르면 안 됩니다. 머리를 너무 괴롭혀서도 안 됩니다.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끈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불꽃 앞에서는 짤막한 기억밖에 허락하지 않습니다. 끙끙대며 죽을 때까지 밀어야 합니다. 그뿐입니다. 절대 상대를 만들어서 밀면 안 됩니다. 상대는 끝도 없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 법이니. 소는 초연히 밀고 갑니다. 무엇을 미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해드리지요. 인간을 미는 겁니다. 문사文士를 미는 것이 아닙니다. --- 「1916년 8월 24일, 구메 마사오·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세상은 울기에는 너무 우스꽝스럽고
웃기에는 너무 추악한 곳이니” 젊은 영문학도에서 시대의 작가가 되기까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과 우정, 웃음과 눈물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문학론, 우정과 희로애락을 담은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이 읻다의 서한집 시리즈 〈상응〉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일생의 벗이었던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비롯해 소세키에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집필을 권유해 소설가의 길로 이끈 작가 다카하마 교시, 평생을 함께 한 아내 나쓰메 교코, 소세키가 가장 아낀 문하생이었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가족과 친구, 동료 문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수록했다. 영문학을 공부하며 하이쿠를 쓰던 청년기에서 시작해 정부의 명으로 고국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던 런던 유학생 시절, 처음으로 쓴 소설이 큰 성공을 거둔 뒤 생계와 창작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년기를 지나 심각한 위장병에 시달리면서도 집필을 놓지 않고 젊은 문하생들과 교우하던 만년까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생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일본 이와나미쇼텐에서 발행한 《소세키 전집》에 수록된 2천여 편의 편지 가운데 옮긴이 김재원이 145편을 선별하여 엮은 것으로, 소세키의 생애에 따라 5부로 구성되었다. “알 수 없구나, 태어나고 죽어가는 인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한시와 하이쿠를 읊으며 문장을 논하던 청년 소세키 봄비 내리는 버드나무 아래를 젖은 채 걷네 ― 1894년 3월 9일, 기쿠치 겐지로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부에는 도쿄대학 예비문 재학 시기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던 때까지의 글이 담겨 있다. 이 시기 소세키는 근대 하이쿠 문단에 선구적 발자취를 남기게 될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대학 예비문에서 만나 동갑내기 친구이자 평생의 문우로서 우정을 나눈다. 둘은 젊은 문학도이자 하이쿠 시인으로서 문장론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한편, 삶의 회의나 허무에 대해 허심탄회한 푸념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 익살 가득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독자는 고사성어와 선어(禪語), 한시, 중국 고전 등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한편 영어를 두서없이 혼용하는 소세키의 문장을 따라 가며, 전통과 서구 문물이 혼란하게 뒤섞이던 메이지 시대의 공기와 그 속에서 동양의 근대를 고민하던 한 청년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편지에는 또한 소세키가 쓴 하이쿠와 한시가 다수 포함되어,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 활동하며 문재를 갈고 닦던 젊은 소세키의 일면을 만나볼 수 있다. “얼른 일본에 돌아가 광풍제월과 청천백일을 보고 싶소” 안개의 도시 런던에서 찾아온 신경 쇠약과 친우의 죽음 올려 마땅한 향 하나 없는 채로 저무는 가을 ― 1902년 12월 1일, 다카하마 교시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900년, 소세키는 문부성의 명을 받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2부는 이 유학 시기의 편지들을 모았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소세키는 서툰 언어며 낯선 의식주, 빠듯한 생활비, 이방인으로서의 고독감 등에 시달리며 유학생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방에 틀어박힌 채 신경 쇠약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병석에 누운 벗을 위로하기 위해 펜을 들어 런던 생활을 유머러스하게 써내려간다. 시키와 교시가 발행하던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런던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네 편의 산문은 소세키 문학에 담긴 해학과 익살의 시작점을 엿볼 수 있는 서한집의 백미다. 그러나 일본을 떠날 때 다시는 살아서 만나지 못하리라 짐작했던 벗 시키는 지병이 악화되어 곧 세상을 떠나고 만다. 공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편지를 자주 보내지 못한 소세키는 막막한 슬픔 속에서 “백옥루의 사람”이 되어버린 망우를 그리며 추모의 하이쿠를 편지에 써 보낸다. “나는 백대까지 내 글을 전하고자 하는 야심가라네” 소설가 소세키의 탄생, 그리고 생계와 창작 사이의 줄다리기 책의 3부는 귀국 후 도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를, 4부는 대학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해 글을 쓰던 시기를 다룬다. 유학에서 돌아온 소세키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교 세 곳에 바삐 강의를 나간다. 경제적 압박과 생업의 스트레스로 신경 쇠약이 더욱 심해지자, 교시는 소세키에게 정신적 안정을 위해 소설을 써보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38세의 나이에 기분 전환 삼아 쓰기 시작한 첫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호토토기스》에 발표되면서 큰 인기를 얻는다. 그때부터 봇물 터진 듯 단편과 장편을 활발히 집필하며 소설가로서의 천명을 비로소 깨달은 영문학자 ‘긴노스케(소세키의 본명)’는 일본 근대 문학에 큰 발자국을 남긴 작가 ‘소세키’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교직을 벗고 신문사 소속 전업 작가가 되면서, 소세키는 왕성한 창작열로 숱한 대표작을 탄생시킨다. 이 시기의 편지들은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도 스스로의 능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열의와 진중한 문학론으로 채워진 한편, 생계에 매인 월급쟁이로서의 고뇌 또한 담고 있다. “세상은 끈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불꽃 앞에서는 짤막한 기억밖에 허락하지 않습니다” 병과 고통 속에서 눈감는 날까지 이어진 문학적 열정 가을이건만 읽다 남은 책 한 권 언제 읽을지 ― 1916년 9월 2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쓴 편지 중에서 만년의 소세키는 심각한 위장병에 시달리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평생 앓아온 신경 쇠약 또한 악화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편지를 모은 5부에서 독자가 만나게 되는 것은 질병의 피로와 무력감에 찌든 모습이 아닌, 어린 독자에게 다정한 답장을 보내고 문학가를 희망하는 청년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건네는 모습이다. 병을 앓는 중에도 소세키는 문하생들과의 모임인 ‘목요회’를 지속하며 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과 활발히 교유하고, 집필 또한 꾸준히 지속하여 《마음》과 같은 대표작을 남긴다. “죽는 날까지 후진들을 위한 길을 개척하고 싶다”던 중년기의 말대로 소세키는 다음 세대의 작가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날카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중 한 명이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후에 다이쇼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소세키가 문학을 가교 삼아 세대를 건너 진솔한 우정을 나누었듯, 삶과 문학에 대한 소세키의 회포가 담긴 이 서한집을 통해 독자 또한 시대를 건너 그와 친교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시리즈 소개 ‘상응相應’ 우리가 마주하는 작가의 작품은 정제된 정신의 결과물이다. 책을 만드는 과정처럼, 저술은 기획과 집필, 편집을 통해 가다듬어져 하나의 전체를 이루어 나간다. 완결성을 갖는 한 정신의 산물은 우리에게 지적인 희열을 주기도 하고, 그 탁월한 문체에 우리는 매료되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은 공통의 감각을 가진, 정해지지 않은 독자를 향한다. 하지만 하나의 문장이 되기 위한 생각, 미처 한 권의 책이 되지 못한 글은 어디에 있을까. 편지는 자신에서 출발하여 유일한, 적어도 제한된 독자를 향한 글이다. 또한 수신인의 답장을 요구하고 이내 자신의 반응을 담는 과정을 통해, 과제를 부여하고 생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지는 크로키나 데생처럼 한 정신의 밑그림을 좇을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며 그가 마주한 다양한 정서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정해진 수신인을 보다 첨예한 논쟁의 장으로 이끌기도 하며, 자신의 문체를 조탁하고 방법론을 시험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읻다의 ‘상응相應’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해명과 주석,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맥락에 대한 평가, 작가가 타인에게 토로하는 감정 등을 담아 주저로만 익숙한 작가와 사상가의 사유의 궤적을 좇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