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해조(李海朝)는 1869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열재(悅齋)다. 어려서부터 한시와 판소리를 익히고 문학을 독학하면서 19세에 과거에 급제, 군수 자리에 앉지만 이후 개화 지식인이 되어 서울에서 언론인 및 소설가의 삶을 살게 된다. 1907년부터 ≪제국신문≫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고목화≫, ≪빈상설≫, ≪구마검≫, ≪홍도화≫, ≪만월대≫, ≪모란병≫ 등을 연재하는 소설가의 신분을 겸한다. 대한협회·기호흥학회의 회원으로 자강 운동에 참여하면서 ≪대한민보≫에도 ≪현미경≫, ≪박정화≫ 등을 연재했다. 그 밖에 ≪화성돈전≫, ≪철세계≫ 등의 번역서를 내기도 했다. 1910년 이후 총독부 어용지 ≪매일신보≫에 입사한다. 신소설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이인직이 점차 문학에서 손을 떼고 정치에 뜻을 두는 동안에도 그는 연재소설 창작을 계속한다. ≪자유종≫에서는 토론 형식을 빌려 자신의 정치 이념을 제시하고 있으며, ≪화의 혈≫에서는 부패 관리의 부정을 폭로하는 비판 의식을 보인다. 대체로 그의 신소설은 신교육과 개화사상을 고취하면서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다뤘다. 그는 이를테면 이인직과 신채호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로 ‘온건파 개화론자’의 노선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차 전작의 날카로운 사상이 둔화되고 내용 또한 통속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1920년대에 들어서서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낙향했으며, 1927년에 사망했다.
갖은 요악을 다 부려, 남편 빼앗고 집·세간·종까지 빼앗고 무엇이 부족하여 한편 구석에 쫓겨 와 있는 데까지 네년을 보내어 포달을 피게 하더냐 마더냐 하고 금분이 이 뺨 저 뺨을 쥐어박아 시앗의 분풀이를 하려 들련마는, 본래 가정의 학문이 상없지 않고 천성이 유순하여 범절이 덕기(德氣)가 더럭더럭한 부인이라, 설왕설래(說往說來)를 하다가 점점 뒤 거친 말이 나올까 염려를 하여 일아개장에 미국 대통령이 구화(?和) 담판하듯 평화하도록만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