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여객기는 힘으로 조종하는 비행기가 아니다. 조종간을 잡고 버튼을 돌리는 데는 그렇게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 심지어 조종간은 손가락 두 개 가지고도 조종할 수 있을 만큼 민감하다. 버튼을 돌리고 누르고 잡아당기고 컴퓨터에 숫자나 알파벳을 입력하고 파워 핸들을 밀고 당기는 데 무슨 힘이 들겠는가? 지식과 경험, 냉철한 판단력, 신중한 선택, 반복된 연습과 훈련으로 숙련된 기술… 이런 것들로 조종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조종하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부족한 점은 분명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은 그저 우리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 pp.26~27, 〈편견은 시야를 좁히고 귀를 멀게 하는 장애〉
초저녁 비행을 나가기 위해 회사에 출근했다. 공항 바로 옆에 위치한 회사의 실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행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데 심장을 가득 채워주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륙하는 비행기의 힘찬 엔진 소리가 그것이다. 발을 구르는 듯한 작은 소리에서 시작되어 점차 무르익다가 최고 출력에 다다르면 감정이 폭발하는 듯한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며 비행기가 발을 떼고 힘껏 날아오른다.
남들은 ‘소음’이라고 여길지 모를 이 거대한 소리가 나에게는 가슴 벅찬 ‘감동의 소리’이다. 이 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부풀고 어서 비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이쯤 되면 감히 ‘파일럿이라는 직업은 나의 천직이다.’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 p.79, 〈늦게 출발해도 목적지에는 도착한다〉
우리는 미래를 예상할 수만 있을 뿐, 언제 어떤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실제로는 알 수 없다. 적당한 시기를 놓쳤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고 이미 늦은 나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시도가 망설여지고 미래에 닥칠 것 같은 태풍이 두려운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착륙 가능성을 믿고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우리도 자신의 꿈에 믿음을 갖고 이륙해야 한다. 설령 선회비행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회항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막상 그 미래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그곳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일 수 있다.
--- pp.84~85, 〈늦게 출발해도 목적지에는 도착한다〉
처음 오산 미 공군부대의 에어로클럽에서 비행기를 배우던 2002년, 거기서 타던 교육용 비행기는 엔진이 하나짜리인 프로펠러 비행기였다. 시험관 선생님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은정아, 비행을 할 때는 ‘만약에…’라는 생각을 늘 가져야 한다. 만약 엔진이 고장 났다면 어디에 비상착륙을 해야 할까 하는 준비를 늘 하고 다녀야 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위험은 나만 피해 다니지 않는다. 위험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만에 하나 내가 운행하는 비행기에 위험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늘 머릿속에 담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이라면 어려울 게 없다.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는 미래,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최고의 예방책이자 해결책으로 ‘준비’를 하는 것이다.
--- p.101, 〈준비는 최고의 예방책과 해결책〉
가만히 생각해보면 머리가 하얗고 연세가 지긋한 기장님들 모두가 시력이 완벽할 리 없다. 비행을 하다 보면 눈이 쉽게 피로해져 시력이 나빠지기도 하고, 그런 환경에서 해를 거듭해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안이 오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 기장을 해고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 시력이 완벽하지 않아도 교정시력이 비행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이고, 비행경력이 항공사에서 필요로 하는만큼 충분하다면 파일럿이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조종훈련생으로 입사해 회사 돈으로 비행 공부를 하지 않아도, 즉 내 스스로 항공사에서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면 파일럿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 p.162, 〈제2의 조은정〉
눈뿐만이 아니다.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터라 비행기 안의 공기가 굉장히 건조하기 때문에 주름도 쉽게 생기고 피부도 많이 건조해진다. 고도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압 차이 때문에 발도 붓고 귀도 먹먹해진다. 그래서 신발도 한 치수 크게 신어야 하고 옷도 느슨하게 입어야 한다. 조종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조종실을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 항공 교신 소리와 엔진 소리, 바람소리는 청력을 약화시킬 정도로 시끄럽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가급적 빠르게 식사를 하다 보니 밥 먹는 시간도 무지 빨라졌다. 매일 비행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다 보면 어제는 낮 기온이 영하 20도인 곳에 갔다가 오늘은 영상 30도인 곳에 가고, 내일은 영상 40도가 되는 곳에 가야 할 때도 있다. 하루는 눈보라를 걱정하고 하루는 태풍을 걱정해야 하는 식이다. 도대체 내가 어느 기후에 살고 있는지 헷갈리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좋을지 모를 경우도 허다하다.
--- p.285, 〈가지고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