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철학은 어떻게 우리를 다르게 하는가?”, “예술은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즉 “예술과 철학은 삶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라는 명제이죠. 사실 이 세 문장은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나를 네가 아닌 나로 만들 수 있는 것, 그 고유한 다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곧 다름이자 자유이고, 새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들은 자신의 작품으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들의 민감함과 자유로움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런 예술가들의 시각과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는지에 관해 말하고자 합니다.
--- 「프롤로그」중에서
예술이 거짓말을 한다면, 예술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거짓말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합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속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놓고 속이는 거라니,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바넷 뉴먼의 작품, [Onement VI]을 보죠. 바넷 뉴먼과 그의 작품에 대한 특별한 정보가 없다면, 이 작품을 보고 우리는 보통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도 하겠네’라고요.
--- 「5장, ‘예술은 거짓말을 한다」중에서
그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멀리서 보고 그것에 대해 내렸던 판단, 즉 “오리 튜브”라는 판단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은 풍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래빗]이 풍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제야 감탄하게 됩니다. 마치 한 사람이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할 때입니다.
--- 「9장, ‘타자를 마주하는 법: 제프 쿤스와 어린 왕자」중에서
그러니 우리가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그 석유통은 사실 쓰레기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도구들입니다. 그런데 로무알드 하주메가 생각하기에 서구가 훔쳐 간 것은 석유나 경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은 그들의 정신적 문화인 가면까지 싹쓸이해갔죠. 그리곤 베넹의 원주민들은 만들지조차 않은 쓰레기들만 남기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석유통과 쓰레기를 통해 서구가 훔쳐 갔던 자신들의 정신문화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주제가 이제 또 정해졌네요. 서구가 약탈한 것과 남기고 간 것이 이제 작품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걸 보여주면 됩니다. 그는 유럽이 훔쳐 갈 때 남기고 갔던 쓰레기들로 자신들이 상실한 정신문화, 즉 아프리카의 가면을 만드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작품이죠.
--- 「12장, ‘물건 다르게 보기: 로무알드 하주메」중에서
옥자와 뫼르소는 바로 여기에서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창조물들과 함께 놓여있습니다. 이방인이면서도 우리를 보여주는 가족, 즉 Young Family라는 정체성으로 말이죠. 이 새로운 가족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대하는 그들의 가족처럼, 쓸모가 사라지니 그저 혐오스러운 벌레처럼 취급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모습으로 대할 것인지, 패트리샤 피치니니와 그가 창조한 생명체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 「16장, ‘우리와 우리: 옥자와 이방인, 그리고 패트리샤 피치니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