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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스무사흘이 지나자 눈이 미친 듯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꽃이 천지사방으로 휘날려 하늘은 온 데 간 데 찾아볼 수가 없다. 빠지작, 빠지작, 폭설에 뒤덮인 나뭇가지들이 부러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늘은 마치 마당에서 뒹굴며 떼쓰는 아이와 같이 제멋대로다. 이 눈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도 않고 이곳 옌산(燕山) 깊은 골짜기 바이양위(白羊?)에서만 사흘 밤낮 연속 퍼부었다. 때로는 함박눈이, 때로는 싸락눈이 내려 마을의 곳곳을 새하얗게 단장하였다. 솜덩이 같은 큰 눈이 언덕에, 도랑에 떨어진다. 산기슭도, 옛 만리장성도, 마을도, 사람들도 모두 눈에 파묻힌다. 여든이 넘은 판라오징(范老井) 할아버지는 토끼 사냥하러 산등성이를 따라 산을 넘다가 그만 미끄러져 눈 속에 빠지고 만다.
눈 속에 깊이 파묻혀 도저히 일어날 수조차 없다. 사람들이 눈을 파헤쳐서야 겨우 눈더미 속에서 빠져나온 판라오징은 에취, 에취 재채기를 연거푸 한다. 순간 코밑에는 맑은 콧물 두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미쳤네, 미쳤어!”라고 말하며 공중을 향해 사냥총 두 방을 땅! 땅! 쏜다. 하지만 하늘은 총알도 두렵지 않다는 듯 여전히 산과 들을 향해 눈꽃을 휘날린다. 이 총은 하늘을 향해 쏜 것이기도 하고 멀리 수도에 있는 손자 판사오산(范少山)에게 쏜 것이기도 하다. “이놈 자식, 집에 폭설이 와서 재해를 입었는데 그림자 하나 얼씬 안 하냐!”라며 손자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눈꽃은 여전히 흩날리고 있다. 하지만 거친 숨을 몰아치던 바람은 드디어 잠잠해졌다.
판라오징은 눈 한 움큼 쥐고 냄새를 맡아본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는 손에 잡혀있던 눈을 꽉 비비며 허허 웃는다. 수도에는 눈은커녕 오로지 스모그만 자욱하다는 사실을 판라오징은 알 길이 없다. 하늘은 더럽혀진 걸레처럼 우중충하다. 거리를 오가는 주마등같은 차량, 명절 분위기라고는 조금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채소시장은 설 분위기로 들끓는다. 도시 사람들은 마치 벌떼처럼 한 무리 한 무리씩 시장에 모여들어 매장의 채소들을 싹 쓸어간다. 설이 바로 코앞이라 며칠 동안 장사가 호황이다. 판사오산(范少山)의 좌판 위의 채소도 마찬가지로 매진이다. 입고되어야 할 채소가 매장으로 들어올 수 없어서 속에 불이 탄다. 그래서 직접 운반하려고 차를 몰고 나섰지만 이런 또 길이 막혀서 옴짝달싹 못하니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다. 애간장을 태우는 판사오산의 모습을 보고 싱얼(杏?)은 옆에서 그저 깔깔 웃기만 한다.
판사오산의 고향은 허베이성(河北省) 옌산의 바이양위이다. 5년 전, 사오산은 돈벌이를 위해 베이징 창핑(昌平)으로 상경했다. 정말 열심히 벌어서 다른 사람의 대접과 존중을 받으면서 살고 싶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몇 년 동안 고생한 끝에 지금은 채소시장에 10여 제곱미터짜리 좌판 하나를 마련했다. 사오산과 함께 채소를 파는 아가씨는 구이저우성(?州省) 출신의 여자 친구 옌싱얼(?杏?)이다.
도시에서 살아나가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사오산은 이미 3년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설도 채소 좌판에서 쇤다. 며칠 전에 집으로 전화했다. 사실은 마을의 유일한 휴대폰, 그것도 버튼이 두 개나 떨어져나간 위라이숴(余??)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아버지는 전화에서 “사오산아, 집에는 다 무사하니 걱정하지 말거라. 보니까 베이징, 톈진(天津), 허베이성이 일체화로 발전한다고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더라. 그러니까 베이징에서 열심히 일하라!”라고 한다. 사오산은 전화에서 할아버지와 어머니께도 새해 인사를 올렸다. 전화를 하고 나니 그나마 마음에 걸렸던 체증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베이징에서 어떻게 채소를 팔아 돈을 많이 벌 궁리만 하면 된다.
물론 수도 시민들의 설 명절 음식상에 길상을 의미하는 요리를 보태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으로는 참으로 충실하고 뿌듯하다. 하지만 조금 전 채소시장에서 고향 부구진(布谷?) 출신의 동향한테서 고향에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한참 바삐 돌아치고 숨 돌릴 틈이 생기자 얼른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뉴스를 본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 속의 바이양위는 눈보라가 파도를 이루고 마을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하늘과 땅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위라이숴한테 전화를 걸었으나 불통이었다.
사오산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큰일이 났을 거라는 직감이 든다. 아마도 큰 눈에 송신탑이 눌려서 고장이라도 생긴 모양이다. 사오산의 얼굴은 금세 먹구름이 끼었고 마음은 안절부절못한다. 바이양위는 폭설 재해를 입었다. 가족들은 모두 무사한 것일까? 급한 사태에 이렇게 가만 앉아있을 수만 없다. 얼른 집으로 가 보자! 싱얼은 사리가 밝은 여자다. 구이저우가 고향이라 매운 고추를 간식 삼아 먹기를 좋아한다. 사오산이 그 말을 하고 있을 때 싱얼은 마침 채소 더미에서 고추를 집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고 있던 참이었다. “오빠,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내가 있으니까요.” 하면서 사오산 얼굴에 소리가 쪽 나게 입을 맞춘다. 사오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손으로 얼굴을 닦고 또 닦는다.
사오산은 운전해서 바이양위로 가기로 한다. 베이징에서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그나마 빨간색 BYD 자가용 한 대를 마련했다. 빨간색 차는 눈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것 같다. 바이양위에 도착하니 하늘도 지쳤는지 눈이 멈췄다. 옌산 아래 바이양위는 설송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설송은 눈꽃이 내리는 순간 열기를 받아 나뭇가지 위에서 액체로 되었다가 다시 한파를 만나 얼음 구슬로 변하여 쌓인 것이다. 설송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사오산은 설송을 본 적이 있지만 싱얼은 설송을 본 적이 없다. 산자락에 도착할 무렵 사오산은 차를 세우고 휴대폰으로 찰칵찰칵 사진 몇 장 찍어 싱얼한테 보내준다. 싱얼이한테서 하트를 받을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입가가 실룩거린다. 싱얼은 엄지 이모티콘 혹은 빨간 고추 이모티콘을 자주 보내온다. 하지만 오늘은 사진이 전혀 전송되지 않는다.
---「제1장 눈이 펑펑 쏟아지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