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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霧津紀行)
생명연습(生命演習) 서울, 1964년 겨울 야행 역사(力士) 차나 한 잔 그와 나 염소는 힘이 세다 건(乾)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다산성 서울의 달빛 0장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KIM, SEUNG-OK,金承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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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 「무진기행」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세계’를 가졌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가 그 성곽에서도 특히 지하실을 차지하고 사는 모양이었다. 그 지하실에는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 새 없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모두 그들이 가진 귀한 재산처럼 생각된다. --- 「생명연습」 중에서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한마디로 얼마나 기막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과정 속에는 번득이는 철편(鐵片)이 있고 눈 뜰 수 없는 현기증이 있고 끈덕진 살의가 있고 그리고 마음을 쥐어짜는 회오(悔悟)와 사랑도 있는 것이다. --- 「생명연습」 중에서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 「서울, 1964년 겨울」 중에서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서울, 1964년 겨울」 중에서 “이젠 그만 집어쳐요, 엄마. 우리 그 장사는 그만 집어쳐요”라고 말하면서 누나는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대고 울었다. “무서워요. 무서워죽겠어요.” 계속해서 누나가 말했다. “살기란 힘든 거란다.” 어머니가 힘없이 말씀하셨다 --- 「염소는 힘이 세다」 중에서 아아, 모든 것이 항상 그렇지 않았더냐. 하나를 따르기 위해서 다른 여러 개 위에 먹칠을 해버리려 할 때,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보다 훨씬 앞서 맛보는 섭섭함. --- 「건(乾)」 중에서 누군가 그 여자로 하여금 한 남자만의 소유가 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그 여자의 말 속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군가는 자기의 꿈이라고 그 여자는 말했지만 수녀가 되는 여자들에게도 천주(天主)에 봉사하기를 부추기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 「서울의 달빛 0장」 중에서 그러나 모두가 고향과 닮았으나 아무 데도 고향은 아니듯 모두가 아내를 닮았으나 아내는 아니었다. --- 「서울의 달빛 0장」 중에서 |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다!”
한국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1960년대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김승옥 작품집! 김승옥은 한국 문단의 신화와 같은 작가로,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그의 작품을 두고 ‘감수성의 혁명’이라 칭하며 “그는 우리의 모국어에 새로운 활기와 가능성에의 신뢰를 불어넣었다”고 평했다. 1960년대 한국 문학에 새바람을 일으킨 김승옥의 작품들은 절제된 감정과 지성이 결합한 빼어난 문체를 바탕으로 남다른 감수성을 선보였고,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젊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책은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을 비롯하여 〈생명연습〉, 〈건〉, 〈염소는 힘이 세다〉 등 김승옥의 대표 단편 12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김승옥의 단편들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과 고뇌, 애환을 담고 있으며, 쓸쓸한 도시인의 불안과 상실감, 일탈 등을 절제된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냈다. 현대인의 허무의식과 쓸쓸한 일상의 비애 1960년대는 급격하게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로 김승옥은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파편화되고 익명화된 도시의 삶과 사람들을 그려냈다. 거대 도시 속에서 소외당하는 현대인의 비애와 쓸쓸한 일상 그리고 허무의식은 김승옥 소설을 관통하는 큰 줄기로, 〈무진기행〉에 그 허무의식과 비애가 잘 드러나 있다. 〈무진기행〉은 한국 문학사상 최고의 단편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으로, 허구의 도시 ‘무진’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의 내면 갈등을 섬세하고 우아한 필체로 그려냈다.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한 주인공은 안개로 대표되는 고향 무진에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정에 꿈틀대지만,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라는 말로 억압적이고 획일화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모습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상실에 대한 다양한 변주 김승옥 소설의 일관된 주제 중 또 하나는 사랑과 상실의 문제이다. 김승옥 소설의 남성 인물들은 대부분 사랑하는 대상을 이미 상실했거나 지금 상실하고 있는 중이며, 혹은 곧 상실할 예정이다. 이러한 상실의 상황과 예감에 맞서 그들은 각자 자신의 논리와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서 대응하는데, 그 과정 속에는 김승옥의 표현을 빌리면 “번득이는 철편이 있고 눈뜰 수 없는 현기증이 있고 끈덕진 살의가 있고 그리고 마음을 쥐어짜는 회오와 사랑”도 있다. 김승옥의 소설은 사랑하는 대상이 “물이 증발하듯이 어디론가 스르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으로 시작해서 그 사랑하는 대상과의 “완전무결한 몌별”로 끝이 나는 긴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사이 남성 인물들은 대상을 상실하고, 그 상실을 통해 무엇이나마 남기기 위해 애를 쓰고, 그러다가 결국 그 대상과, 대상과의 상실을 통해 획득한 그 무엇과, 그리고 자신만의 ‘자기 세계’와 완전히 이별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