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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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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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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26g | 148*210*15mm
ISBN13 9791196757373
ISBN10 1196757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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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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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동안만이라도 ‘내가 하지 말았어야 했고, 지금도 후회하는 그 모든 죄를 내려놓아도 된다’고 속삭이듯 내린다. 과거의 후회는 덮이고 그 위로 결백한 눈이 쌓인다.
--- p.8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벽돌 같은 모양을 한 심장귀신이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일기. 호두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명확한 두 명. 두 명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 부분을 아버지가 펼치더니 불같이 화를 내며 찢어냈다.
--- p.29

“막내야, 우리는 심장이 뛰는 사람이지? 여기에는 빨갛고 뜨거운 피가 흐른다. 저들과는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거다.”
--- p.52

화염 속의 공작새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우아한 활개를 하며 도저히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타오르는 붉은 생명력이 내 눈동자에 활활 타오르고 있다.
--- p.61

“우리 막내는 아직 깃털도 안 난 병아리 같다. 그래도 언니는 이제 중닭은 된다. 할미가 빨리 나아서 올 때까지 고개 숙이지 말고 땅을 보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
--- p.92

그래도 나는 내가 아무리 두렵고 나이가 어렸어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 말을 해야만 했다는 것을 안다.
--- p.98

나는 그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떤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만 아니고자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 p.144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숨기려는 것이 그 사람을 아프게 하는 일이라면 덮어주고 싶었다.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꺼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그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라 믿었다.
--- p.215

쉽게 말할 수 없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실 거의 모든 감정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p.233

그렇다고 목 놓아 울어본 적도 없이 시간은 지나간다. 울어야 할 때 실컷 울지 못한 사람은 나중에 운다.
--- p.252

위험한 불로 장난을 치면서도 어른들의 보호를 받기에 불안해하지 않고 저 멀리 별들의 파편을 내뿜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구의 자전보다 더 중요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 p.263

“할머니. 할머니, 제가요. 제가 언니의 딸과 아들이 자라는 걸 볼 수 있을까요. 조카를 안아주고 재워주고 사랑해주고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망설임 없이 곧바로 채워지는 인자한 목소리, “막내야, 못할 것도 없다.”
--- p.267

어린 새는 힘 있게 날아오른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온 순간부터 날 수 있었던 것처럼.
--- p.270

영화 러브레터의 첫 장면처럼 지면과 고개를 평행으로 하고 눈을 그대로 맞았다. 처음의 간지러움을 조금 이겨내자 주변은 조용해지고 눈의 감촉만이 생생했다. 이것이 내 고향, 강릉다운 눈이었다.
--- p.273

그 실낱같은 희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건 단지 미래였다. 확실한 행복을 품지는 못했어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 같은 미래. 그 정도의 희망에 나는 또 넘어갈 만큼 또 나약하고 비겁한 선택을 한 것이다.
--- p.287

확실히 내 발끝까지 뜨거운 피를 보내며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이 심장이 정말 나를 위해 뛰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나를 위해서도 뛰고 싶은 것일까. 내 의지를 싣지 않은 뜨거운 혈액이 온몸에 퍼지고 있었다.
--- p.297

나는 눈이 내렸으면 했다. 그래서 이 먼 한강 길을 걸었다. 오늘 이 시간, 단 한 번만 눈이 내려줬으면.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이 세상과 함께 고요하게 나를 덮어주기를.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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