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이 되면 교과서 내용이 갑자기 어려워진다. 수학이 특히 그렇다. 일상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큰 수의 개념과 소수 계산도 나온다. 모든 교과에 추상적인 수준의 사고를 필요로 하는 교재가 늘어난다. 그로 인해 가정 학습 습관이 되어 있지 않는 아이와 독서 습관이 부족한 아이는 수업을 따라오지 못한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가 부쩍 늘어나는 것도 4학년부터다. 도시에서는 50% 가까운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데 일주일에 두 번, 학원비는 10만 원을 웃돈다. 그러나 학원에 다닌다고 해서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 성적은 쉽게 좋아지지는 않는다. 학원 경영자조차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다녀서 1년에 성적을 한 등급 올리는 실력 있는 학원이 있다면 우리 아이를 먼저 보내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다.
학원은 아이를 지금보다 성적이 더 떨어지지 않게 하는 효용은 있다. 학원에 가면 성적이 더 뚝뚝 떨어지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일단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다녀서는 성적이 향상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학원에 다니면서 성적이 좋아지는 아이는 5% 정도에 불과하다. 5%의 아이는 학원에 다니는 것을 계기로 가지 않는 날에도 집에서 일정 시간 스스로 공부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학원이 공부 습관의 마중물이 된 것일 뿐, 그저 학원에 맡기기만 한다고 해서 아이의 성적이 향상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들은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자주 상담해 온다. 전화로 상의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아이 스스로 학원에 가고 싶어 하는지, 학원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학원을 활용해 가정 학습 습관을 들일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비중으로 독서 습관을 들이는 데 더욱 배려할 것을 요청한다.
---「학원은 공부습관의 마중물일 뿐」중에서
일반적으로 성적이 좋은 아이는 매일 10~20분 정도 집안일을 한다. 맞벌이하는 부모를 도와 쌀 씻기, 컵 씻기, 세탁기 돌리기, 뒷정리 같은 일 중 하나를 맡아서 책임 있게 하는 아이는 성적도 상위권인 경우가 많다. 어머니가 전업주부인 가정도 욕실 청소, 현관 청소, 계단 쓸기, 마당 쓸기 등 적당히 집안일을 시키는 가정의 아이가 남녀 불문하고 자세도 바르고 학력도 높은 편이다.
집안일은 단순한 심부름 수준과 달리 원활한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노동이다. 단순한 심부름 정도라면 굳이 하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지만 책임이 주어진 가사 노동은 아이가 해주지 않으면 불편이 따른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가 저녁밥 짓는 일을 맡았을 경우 친구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쌀 씻기를 잊어버렸다면 가족 모두 제때 저녁 식사를 할 수 없다. 배고픈 것을 꾹 참고 밥이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또는 세탁을 담당한 아이가 세탁기 돌리기를 게을리 하면 하루 이틀 사이에 빨래가 쌓인다.
노동을 하기 전에는 당연히 계획적으로 순서를 정한다. 그리고 꾀를 부리지 않고 일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해야 한다. 놀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만화책이나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도 견뎌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계획성과 함께 인내라는 덕성을 갖추게 된다.
게다가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각이 되면 서둘러 해야 한다. 우물쭈물해서는 안 되고 스위치의 전환이 필요하다. 매일 책임 있게 집안일을 분담하는 아이는 쉽게 스위치 전환을 한다. 빠르면서도 확실하게 집안일을 끝낸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한다. 저절로 집중력도 생기고 민첩성도 생긴다. 이런 아이는 일도 공부도 척척 처리할 수 있다.
더불어 집안일이라는 노동을 통해 부모의 고생도 이해하는 아이가 된다. 한편으로는 자신도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원이라는 긍지도 갖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고 아버지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실감한다. 이렇게 가사 노동은 가족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아이로 만든다. 사람을 소중히 하는 태도도 갖게 된다. 집안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성장한 아이는 칠칠찮고 제멋대로이며 평생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툭 하면 말대답을 하고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 단조로운 일이나 끈기가 필요한 학습은 특히 싫어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생활 습관으로 가사 노동을 분담해 실행한 아이는 일이든 공부든 무책임하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정 교육 3 ? 적당한 집안일」중에서
가정 학습 지도에서는 아이에게 무리한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흔히 학습부진아라 불리는 가성(假性) 저학력아가 되지 않도록 매일 ‘해당 학년×10분의 가정 학습’이 바람직하다.
초등학교 1학년은 10분, 2학년은 20분, 3학년은 30분, 6학년은 1시간, 중학교 3학년은 1시간 반이 된다. 절대 무리가 아니다. 물론 숙제도 포함한 시간이므로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빠뜨리지 않고 하면 최소한 저학력아가 될 일은 없다. 조금 욕심을 부려도 매일 ‘해당 학년×20분’이 한도다. 초등학교 1학년은 20분, 2학년은 40분, 3학년은 1시간, 6학년이라면 2시간, 중학교 3학년은 3시간이 기준이다. 이것이 최대 시간이다. 그 이상 시켜서는 안 된다. 전체적인 발달 면에서 폐해를 불러와 오히려 역효과가 된다.
그보다는 친구들과 놀고, 집안일을 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독서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문제집 중심의 학습으로는 결국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학력을 풍부하게 넓히는 것, 깊이 있게 갈고닦는 것이야말로 장래의 성장을 보장한다.
---「가정 교육 4 ? 가정 학습」중에서
보이지 않는 학력이 풍부한 아이는 대개 문화적 수준이 높은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도 충실한 실력을 갖춘 아이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담임을 맡았던 2천 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도 그런 실례가 적지 않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예를 소개해본다.
그 아이는 내가 맡았던 2학년 반의 남자아이였다. 영리하고 성실한 데다 예의도 바르고 늘 침착해서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아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씨도 반듯하게 쓰며 시험에서는 으레 100점을 받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교양 있는 계층이 아니었다. 학력(學歷)은 평균보다 약간 아래이고,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이 시장에서 조그만 정육점을 운영했다. 그런데 아들은 늘 최고 성적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지 주위 사람들도 모두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이의 남동생 역시 공부를 잘했다. 학원에도 안 다니고 부모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데 둘 다 잘 했다.
큰 아이의 담임을 맡았을 때 아이의 공부 잘하는 비밀을 부모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시장은 낮 12시 전후와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손님들로 북적인다. 낮 2시쯤이면 시장도 가게도 한산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급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대략 1시 반에서 2시.
부모는 아들이 공부에 취미를 잃으면 안 되니까 적어도 매일 집에서 공부하는 습관만이라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학년 초부터 집에 오면 바로 부엌에 있는 밥상 앞에 앉혀 그날 배운 공부를 복습하게 했다. 어머니는 그 사이에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일일이 아이 옆에서 공부를 봐줄 수는 없었다. 가끔 아들을 보고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구나”, “우리 아들, 참 잘한다”라는 칭찬이 고작이다. 복습과 숙제를 마치면 밖에 나가 놀게 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하자 아이는 읽기, 쓰기도 잘하고 계산도 정확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선생님의 칭찬이 뒤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니까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복습과 숙제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 20분~1시간 정도 공부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자 이제 확실한 실력을 갖춘 아이가 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몇 해 후에 아이가 국립 대학 합격률이 가장 높다는 유명한 사립 중학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이의 부모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 아이의 부모님 말을 듣다 보면 하나같이 수긍이 갔다. 특히 부모의 마음 씀씀이가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학력을 키우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학원에 안 다녀도 길러지는 보이지 않는 학력의 비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