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청문회가 있었다. 조국은 ‘나는 자유주의자면서 사회주의자’라고 답변했고, 주변 모두가 놀랐다. 진짜로 사회주의를 원하는지 알 수 없으나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부정한 채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유럽 국가들의 또 다른 체제를 보자. 로렌스 리드(L. Reed, 2018)가 말했듯 북유럽 국가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변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체제를 도입해야 할까? 맨큐가 주장하는 미국과 같은 수준의 시장의존도가 높은 자본주의 체제를 즉시 도입하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강력한 개입, 즉 국가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급속한 경제 성장을 달성한 국가다. 한국인은 정부의 개입과 규제에 상당히 익숙해진 상태다. 급격한 규제완화나 시장기능의 도입은 반감을 사기 쉽다.
그러나 지금 자본주의 체제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유지하기 힘들다. 아직도 한국 시장은 공무원이나 정치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개발도상국형 정부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민간의 국제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가 있다. 정부 간섭과 지시 없이도 자신들의 창의력과 추진력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정부는 민간부문에 지원하여 상호 윈윈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경제학 10대 원리는 모든 개인이 경제적 인센티브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개인 간 거래가 시장에서 이루어지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이 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로는 명확한 것이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시장원리를 보완하는 정부 역할, 즉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맨큐의 10대 원리에서 이 부분이 추가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먼저, 시장은 완벽하지 않다. 시장에서의 거래가 현실적으로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를 시장실패라고 부른다. 시장에서 기업 간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독과점이라는 문제가 생긴다. 독점 기업이 부당한 이득을 취할 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장은 개개인에게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직장인은 능력에 따라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이 없거나 일할 의지가 없는 사람은 소득을 얻을 방법이 없다. 이로 인해 양극화나 소득분배 악화가 심해질 수 있다. 시장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 「파트 1 경제학 10대 원리, 제대로 작동 중인가?」 중에서
이러한 시장의 문제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시장을 경쟁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독과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정책으로 소득분배·양극화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 또한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정책 입안자나 정치인은 소수의 기득권자나 자신의 지역구만 생각하는 이기적 결정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부 예산이 낭비되는 포퓰리즘이라는 문제가 있다. 소득분배 개선 정책이 오히려 소득분배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이는 정부실패라고 부른다. (중략) 지금 시장경제체제 속에서는 정부든 시장이든 어쨌든 ‘실패’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자체를 버리고 다른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한다. 더 나아가 국제사회 공동의 노력으로 많은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 「파트 1 경제학 10대 원리, 제대로 작동 중인가?」 중에서
코로나19 확산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정치 전 부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가 자본주의 체제에 앞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첫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은 더욱 강하게 제기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양극화와 소득분배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세계화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양극화·소득분배가 악화된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더 심각한 건 코로나19로 경제성장률도 하락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중략) 필자는 감염병 확산이나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가 탈글로벌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세계화를 통한 글로벌 밸류체인의 형성으로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긍정적인 요인을 포기하기 어렵다. 세계화로 인류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계화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바뀌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확대될 것이다.
--- 「파트 1 코로나19, 탈세계화를 부를 것인가」 중에서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의 양극화 추이는 어떤가? 언론에서는 여론조사를 주로 이용한다. 여기서는 여론조사 결과와 실질적인 자료의 결과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자.
[표 17]은 가구주의 소득, 직업, 교육, 재산 등을 고려한 통계청의 사회경제적 의식조사 결과다. 중산층이라고 답변한 결과를 보면 2013년 51.4%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7년과 2019년 각각 57.6%와 58.5%로 나타났다. 자신을 상류층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2013~2019년 기간 동안 지속해서 증가했지만, 하류층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지속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사회문화 등 종합적 변수를 고려한 인식에서 보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소득 기준으로 보면 중산층 비중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통계청에선 가구와 관련해 ‘가계동향조사(가구에 대한 가계수지 실태를 파악하여 국민소득과 소비 수준 변화측정 및 분석)’와 ‘가계금융복지조사(가계 자산 · 부채 · 소득 등의 규모 · 구성 · 분포와 미시적 재무건전성을 파악)’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소득분배 자료는 연도별로 일관성 있게 발표하지 않아 중산층 추이를 일관되게 비교하기 어렵다.
[그림 13]은 두 종류의 조사 자료를 비교하기 위해 합쳐서 그린 것이다. 2인 이상 도시 가구는 1990년 이후부터 자료가 있는데 2008년 최저인 66.3%에 이른 이후 다시 상승하는 추이를 보여준다. 2006년부터 있는 전체 가구에 대한 자료도 유사한 추이다. 다만 이 자료들은 2016년까지만 발표되어 있다. 2015년 이후는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데 절댓값은 낮게 나오지만 2015년 이후 상승하는 추이를 보여준다.
다만 중복연도인 2016년을 보면 2015년에 비해 두 조사의 중산층 변화추이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중산층이 증가하고 있지만,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 「파트 2 지금, 정말로 양극화는 개선되고 있는가」 중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성립되어야 한다.
첫째, 먼저 자본소득이 아닌 임금소득주도성장 정책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같은 소득주도라고 하지만 정책수단 선택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 총공급이 증가하면서 수요가 함께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소득까지 증가하면 이것도 소득주도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수요가 증가하든 공급이 증가하든 ‘소득주도’에서 ‘소득’은 원인이 아닌 결과다. 결국 ‘주도’한다는 말의 의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구분 없이 단순히 소득주도라고 한다면, 삼면등가의 원칙이라는 경제학 원론 수준에서 생산·지출·분배국민소득 용어를 계속 되풀이하는 것에 다름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부의 분배정책으로 노동소득이 증가할지라도 전체소득은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둘째, 전제조건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노동소득분배율이 실제로 하락하는지에 대한 실증적 검토가 좀 더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분법적 논리에서 자영업자를 노동자와 자본가 중 어디로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아니면 자영업자를 독립된 계층으로 분류해 독자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도 방법이다. (중략) 지금의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성장이론 족보에 오르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소득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포함하고 있지만 두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한 정책은 정반대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는 노동가치설에 근거한 사회주의적 사고가 교묘하게 들어가 있다. 즉, 노동자는 가난한 계층이고 이들이 모든 부가가치를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자영업자까지 노동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렇다고 자영업자의 최저임금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의 정책수단은 자본가와 자영업자가 대상이 아닌 순수 노동자계층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소득이라고 함은 어떤 소득인지 그리고 어느 계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인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이 단순 실험을 넘어 정책적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 검증하는 것이다.
--- 「파트 2 소득주도성장의 작동 조건」 중에서
앞서 살펴봤듯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의 중요한 원인은 자영업자 소득 비중의 하락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 소득보다 자영업자 소득을 증가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자영업자를 자본가로 보고 고소득층으로 구분하거나 자영업자의 영업이익만 볼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서의 소득, 즉 최소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이분법적인 분류에서 벗어나 자영업자는 독립적인 계층으로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독자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자영업자는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거나 1인 이상 고용하여 사업하는 사람을 말한다. OECD는 여기에 가족이나 친인척 중 무급으로 근무하는 무급가족종사자도 포함한다. 이들을 모두 합해서 비임금근로자라고 부른다. [표 25]는 통계청이 발표하는 2015년 이후 취업자와 자영업자 추이를 보여준다.
한국의 자영업자 추이를 볼 때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자영업자 중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감소하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증가했다’는 점이다(2019년 기준). 이러한 문제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들 수 있다.
--- 「파트 2 임금인상에서 소외된 자들」 중에서
취업자는 2015년 약 2,617만 8,000명에서 2019년에는 약 2,712만 3,000명으로 94만 5,000명이 증가하였다. 연도별로 취업자 증가 정도를 보면 2017년을 기점으로 갑자기 하락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23만 명과 32만 명이 증가하였다. 2018년에는 9만 7,000명 증가하였으나 2019년에는 30만 명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추이에는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첫째, 2019년 30만 명 증가 원인은 2018년의 부진으로 나타나는 기저효과 때문이다. 만약 2018년에 30만 명이 증가했다면 2019년은 10만여 명 증가에 그친 셈이다. 이는 2016년 이후 100만 명을 넘어선 실업자가 취업자 증가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 일자리가 창출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정부재정에 의한 증가라는 점이다. 즉, 시장에 의한 증가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령별로 볼 때 60대 이상은 2019년 37만 7,000명이 증가했지만 40대는 16만 2,000명이 감소했다.
셋째, 산업별로 보아도 시장에 의한 창출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조업에서의 일자리 창출은 2019년 기준 5만 6,000명이 감소했으나 사업·개인 공공서비스는 오히려 33만 9,000명 증가하였다.
결국 2019년 고용실적은 2018년의 기저효과이며 정부의 재정 투입에 의한 창출이 대부분이며, 시장에 의한 창출이 뒷받침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정책은 결과적으로 그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줄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같은 일자리 창출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적기 때문에 정책성과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 「파트 2 최저임금,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중에서
부동산 규제정책은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결과가 주는 시사점은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움직임을 고려하여 균형가격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수요는 가격탄력성이 높지만, 공급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따라서 정부가 가격을 내리려고 하면 오히려 수요가 더욱 확대되면서 잠재수요, 즉 가격상승에 대한 심리적 압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의 균형가격이 형성되는 것을 목적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를 비롯하여 강남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절대가격이 안정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혹은 상대가격(서울 - 전국, 강남 - 강북 등)이 안정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 「파트 2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것’의 의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