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스부르크에서 코프만 교수의 토마스 만 강연이 있을 때면 언제나 대강당은 청중들로 넘쳐났다. 토마스 만 전문가들에서부터 가정 주부, 할아버지, 할머니, 청강생에 이르기까지 그의 강연이 그토록 인기를 누린 것은, 그가 토마스 만 연구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한 정평 있는 해석자라는 그의 명성뿐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도 약간의 독설과 유머를 섞은 그의 능변이 작품을 직접 읽을 때보다 더 원작에 충실하고 독창적으로 토마스 만을 연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런 그의 강연록과 논문, 저서에서 발췌한 부분들을 한국에 이미 소개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편집한 것이다. 코프만의 연구는 출처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작품의 생성 과정에 관련한 시대적 상황 및 전기적인 사실에 밀착된 매우 생동감 있는 해석을 보여준다. 그의 오랜 경험에 축적된 토마스 만 관련 자료에 대한 지식은 실로 방대할 정도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치밀한 작품 분석은 언제나 사실적인 연관성의 탐구에 주력하며 복합적이고 난해한 의미층을 풀어나간다.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만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무엇보다 작품의 이야기성에 경탄해 마지않지만 막상 그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해보려 하면 너무도 복잡한 해석 층위에 압도되어 옳은 진전을 볼 수 없었다. 아욱스부르크 대학에서 수년 동안 코프만 교수의 세미나와 강연을 찾아 들으면서 번번이 어떤 체념적인 순간을 맛보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며, 토마스 만에 관한 코프만의 글들을 이렇게 번역하게 된 동기 역시 이런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뒤늦게나마 그때 들었던 강의 내용들을 정리하며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목과도 같은 토마스 만의 문학과 정신 세계에 다시 한번 입문을 시도해본다. 같은 입장에 있는 문학도들에게도 유달리 까다롭고 곡예적인 이 작가 세계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친절한 안내자와 같은 책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덤벼든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역자로서 가지는 양심에 대한 갈등도 적지 않았고, 오역을 피하기 위하여 가능한 많은 시간 동안 고민하며 원문과 씨름했다. 오역에 대해서는 여러 선생님들의 질정이 있기를 바란다.
이 자리를 빌려 미흡한 역자에게 아직 미발표된 최근의 원고까지 선뜻 내어주신 코프만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에겐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이 위기 상황에서 이런 책을 번역하고 출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격려가 된다. 그 감사의 마음을 문학과지성사에 전한다.
끝으로 이 글은 출처가 여러 곳이어서 형식상의 통일성이 없으므로, 역자의 임의대로 각주나 일차 참고 문헌에 대한 지시가 난외에 없는 경우에는 책의 뒤쪽 부록에 따로 수록하였음을 밝혀둔다.
--- 역자의 말
‘세계 문학’이란 개념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게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이 개념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작가는 다름아닌 토마스 만이다. 세계 문학이 있다 한다면,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은 문명화된 세계의 모든 언어들로 번역되어 있다. 독일 문화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는 이유 외에도, 그의 문학에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고지하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 그런 것은 아니다―토마스 만은 이제 19세기가 알고 있었던 세상을 등진 시인이 아니었고, 더 이상 18세기의 천재 사상도 구현하지 않았다. 그는 당세기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논쟁에 동참하였다. <부덴브로크 일가>에서 그는 세기말경 시민 계급의 몰락을 서술하였고, <마의 산>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전의 정신적인 분위기를 그렸으며, 20년대에는 그의 형 하인리히와 나란히 새로운 공화국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였고, 망명 시기 동안은 <바이마르의 로테>와 요셉 소설로써 나치의 독재가 시작되었을 때 그가 도피하였던 독일보다도 더 나은 다른 독일의 대변인이 되었다. <파우스트 박사>에서 그는 독일의 비극을 기술하였고, 그의 후기 작품은 휴머니티를 설파하는 메시지이다.
이 모든 것은 민족주의적인 의미와 나아가 초민족주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노년에 그가 하였던 말은 모두 파괴적인 광신주의에 현혹되어선 안 되며, 그 자신이 언제나 변호하였던 정신적인 것을 지탱하기 위해 불가결한 비판적 자세를 지켜야 한다는 문명화된 세계에 대한 경고였다. 그는 특히 이런 자세에 인간의 자유가 바탕해 있다고 보았다.
토마스 만은 현대적 특징을 지닌 곡예사였다. 이 말은 곧 그가 자기 작품의 소재와 테마, 모티프를 대개 창안해내지 않고, 다른 곳에서 차용하고 독서를 통해 습득한 것을 그의 작품에 편입시켰으며,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고, 그가 다른 사람의 학술적인 연구에서 차용할 수 있었던 것을 그의 에세이에 엮어 넣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의 시적 품격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토마스 만의 소설과 산문, 에세이에 그의 글쓰기에서 전형적인 세계 함의성을 준다. 오직 이런 방식에서 그는 그의 세대의 대변자가 될 수 있었고, 오직 이런 방식에서 이성적인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 문학 사회의 대표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역시 그의 작품은 ‘세계 문학’인 것이다.
토마스 만의 메시지와 통찰, 그가 취한 자세와 그가 보여주는 범례는 국제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초국가적이다. 이것들이 한국에서도 소개되고 읽혀지고자 한다. 류은희 선생님이 이를 위해 적절한 나의 논문들을 편집하고 번역한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이 토마스 만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세기 독일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 작가가 지닌 정신의 일부를 전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 저자의 말
‘세계 문학’이란 개념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게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이 개념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작가는 다름아닌 토마스 만이다. 세계 문학이 있다 한다면,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은 문명화된 세계의 모든 언어들로 번역되어 있다. 독일 문화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는 이유 외에도, 그의 문학에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고지하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 그런 것은 아니다―토마스 만은 이제 19세기가 알고 있었던 세상을 등진 시인이 아니었고, 더 이상 18세기의 천재 사상도 구현하지 않았다. 그는 당세기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논쟁에 동참하였다. <부덴브로크 일가>에서 그는 세기말경 시민 계급의 몰락을 서술하였고, <마의 산>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전의 정신적인 분위기를 그렸으며, 20년대에는 그의 형 하인리히와 나란히 새로운 공화국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였고, 망명 시기 동안은 <바이마르의 로테>와 요셉 소설로써 나치의 독재가 시작되었을 때 그가 도피하였던 독일보다도 더 나은 다른 독일의 대변인이 되었다. <파우스트 박사>에서 그는 독일의 비극을 기술하였고, 그의 후기 작품은 휴머니티를 설파하는 메시지이다.
이 모든 것은 민족주의적인 의미와 나아가 초민족주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노년에 그가 하였던 말은 모두 파괴적인 광신주의에 현혹되어선 안 되며, 그 자신이 언제나 변호하였던 정신적인 것을 지탱하기 위해 불가결한 비판적 자세를 지켜야 한다는 문명화된 세계에 대한 경고였다. 그는 특히 이런 자세에 인간의 자유가 바탕해 있다고 보았다.
토마스 만은 현대적 특징을 지닌 곡예사였다. 이 말은 곧 그가 자기 작품의 소재와 테마, 모티프를 대개 창안해내지 않고, 다른 곳에서 차용하고 독서를 통해 습득한 것을 그의 작품에 편입시켰으며,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고, 그가 다른 사람의 학술적인 연구에서 차용할 수 있었던 것을 그의 에세이에 엮어 넣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의 시적 품격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토마스 만의 소설과 산문, 에세이에 그의 글쓰기에서 전형적인 세계 함의성을 준다. 오직 이런 방식에서 그는 그의 세대의 대변자가 될 수 있었고, 오직 이런 방식에서 이성적인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 문학 사회의 대표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역시 그의 작품은 ‘세계 문학’인 것이다.
토마스 만의 메시지와 통찰, 그가 취한 자세와 그가 보여주는 범례는 국제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초국가적이다. 이것들이 한국에서도 소개되고 읽혀지고자 한다. 류은희 선생님이 이를 위해 적절한 나의 논문들을 편집하고 번역한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이 토마스 만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세기 독일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 작가가 지닌 정신의 일부를 전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 저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