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이미지
이전
‘새벽의 비트와 연주, [Mild Dawn City]’
기린은 90년대를 일회성 향수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 받아들여온 아티스트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음악 동료들을 모아 에잇볼타운(8Balltown)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린을 좋아해온 이들에게 에잇볼타운이란 더 많은 꿈과 낭만을 안겨주는 집단이었다. 후쿠오(Hookuo)를 알게 된 건 그가 에잇볼타운에 입단하고부터다. 후쿠오의 음악을 듣자마자 그가 에잇볼타운의 준비된 멤버임을 깨달았다. 고독, 정열, 사랑…. “별자리가 뭐예요?”
하지만 후쿠오가 에잇볼타운 입단 이전부터 이미 활동해온 아티스트임을 잊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그는 지난 2019년 지펑크(G-Funk)앨범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한국 지펑크의 처음이 래파홀릭이나 나인틴스트리트 같은 팀이라면 (놀랍게도) 한국 지펑크의 마지막에는 현재 후쿠오의 이름이 있다. [Mild Dawn City]라는 이름의 이 비트테잎도 마찬가지다. 후쿠오는 이미 몇 년 전에 이 작품을 완성해놓았다.
‘Mild Dawn City’라는 타이틀답게 이 작품은 도시의 새벽을 소리로 그려낸다. 이 17개의 비트를 어디서 어떻게 들을지는 각자의 자유지만 되도록 새벽 즈음에 조용한 방 안에서 턴테이블로 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새벽도시’가 비로소 완성될 테니.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로파이 힙합, 혹은 칠합(Chill Hop)의 정체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에 집중하거나 혼자 편히 휴식을 취할 때 듣도록 창작된 음악 말이다.
그러나 많은 로파이 힙합 음악이 ‘효용’과 ‘무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쿠오의 [Mild Dawn City]는 그에 더해 ‘스타일’까지 갖춘 인상이다. 그리고 이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엘에이 비트씬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이 비트테잎을 들어도 날리지(knxwledge)같은 비트메이커가 떠오르기는 한다. 실제로 후쿠오는 엘에이 비트씬의 규칙 없이 자유롭게 창작하는 태도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날리지, 새미얌(Samiyam), 마인디자인(Mndsgn) 등이 그가 영향받은 인물이다. 매드립(Madlib)이나 제이딜라(J Dilla)같은 ‘근본’은 말할 필요도 없다.
후쿠오가 이 작품을 만들 때 로랜드 SP-404(Roland SP-404) 머신을 비중 있게 활용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로랜드 SP-404는 엘에이 비트씬의 상징적인 머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후쿠오는 70년대 재즈와 보사노바에서 주로 샘플을 채집한 뒤 로랜드 SP-404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활용해 비트를 완성했다. 이를테면 로랜드 SP-404로 똑같은 샘플을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씩 가공하는 식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정확한 질감의 사운드를 얻기 위해 똑같은 과정을 두 번 거치는 것이 중요했다고 후쿠오는 말한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 [Mild Dawn City]는 샘플링 기반의 작품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샘플링으로 채워진 작품은 아니다. 후쿠오가 드럼, 기타, 베이스, 퍼커션 등 여러 악기를 직접 다룰 줄 아는 아티스트임을 잊지 말자. 후쿠오는 이번 작품 속에서 샘플링으로는 온전히 구현할 수 없는 부분들에 자신의 연주를 입혀놓았다. 즉 [Mild Dawn City]는 샘플링과 실제 연주가 공존하는 결과물이다. ‘Tokyo'와 ‘Kids'를 다시 들어볼 것.
어쩌면 [Mild Dawn City]는 ‘양가성’이 특징인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노동요로서의 로파이 힙합인 동시에 비트메이커로서의 스타일을 지켜낸 비트테잎이기도 하고, 헤비한 샘플링 기반의 음악이면서도 실제 연주가 곳곳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아티스트로서의 욕심이 빚어낸 ‘균형’ 이라고 해두자. 비트메이커로서, 연주자로서, 그리고 에잇볼타운의 멤버로서 앞으로 후쿠오가 만들어낼 더 많은 좋은 음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