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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촌장 / 짝사랑, 님타령
탁월한 싱어송라이터 하덕규가 대학동창 오종수와 함께 결성했던 남성듀엣 시인과 촌장의 첫 정규앨범. 포크와 록을 넘나들며 독특한 사운드를 빚어낸 이 앨범은, 1980년대의 중요한 싱어송라이터 하덕규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 데뷔 음반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타이틀곡으로 감각적인 비트와 리듬과 어우러진 파워풀한 화음이 돋보이는 <짝사랑>, 신나는 장단으로 진행되는 국악가요 버전으로 매력적인 곡인 <님타령>, 오종수가 작곡한 슬픈 가요 질감의 곡 <남몰래 흘리는 눈물>, 남궁옥분의 앨범에 수록되어 뒤늦게 사랑받은 <꽃을 주고간 사랑>등이 수록된 희귀 음반.
*전량 수입 제작(아시아)
*150그램 크리스탈 컬러반 500장 한정 제작
*2022년 리마스터링 음원으로 제작
*음반해설과 희귀 사진등이 수록된 4Page 인서트와 OBI 포함.
* 너와 나 (군가)는 이번 재발매 앨범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음반 해설 (부분 발췌)
“풋풋한 습작기의 하덕규 매력”
탁월한 싱어송라이터 하덕규가 대학동창 오종수와 함께 결성했던 남성듀엣 시인과 촌장의 첫 정규앨범이다. 하덕규 스스로도 부끄러워하는 흑 역사로 치부될 정도로 음악적으로 일관성을 지니지 못한 설익은 앨범이지만 음악적 열정으로 탱천했던 풋풋한 청년 하덕규와의 만남은 매력적이다. 음악적으로 정립이 되지는 않았지만 포크와 록을 넘나들며 독특한 사운드를 빚어낸 이 앨범은 정식 발매되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로 인해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질 못했다. 이 앨범을 비공식 1집으로 분류하고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대성공을 거둔 1986년 2집을 1집으로 많이들 언급하게 된 이유이다.
“시인과 촌장의 결성 과정”
남성듀엣 시인과 촌장의 시작은 리더 하덕규와 저 유명한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아닌 대학동창 오종수와 함께였다. 하덕규는 직접 그린 그림으로 음반 재킷을 디자인해 이정선의 뒤를 이어 국내 대중가요 음반 재킷의 아트웍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던 뮤지션이다. 고교 시절에 그는 여러 미술대회에 나가 수상했던 화가 지망생이었다. 공부보다는 그림이 좋았던 그는 홍대나 중대를 지망했지만 필기성적 때문에 꿈을 접고 1980년 추계예대 미대에 진학했지만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고 곧 자퇴했다. 경제적인 궁핍은 화가의 꿈을 놓게 했다. 쉽게 돈과 명예를 얻을 심산으로 하덕규는 추계예대 동창생 오종수와 후배 전홍찬과 남성 트리오 바람개비를 결성해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음악적 탐색과 시도가 담긴 하덕규의 데뷔음반”
계약금으로 거금 130만 원을 받은 하덕규는 연포가요제 사랑의 듀엣 쇼 경연대회 참가와 더불어 같은 달인 1981년 8월부터 첫 앨범 녹음에 들어갔다. 속전속결로 진행되어 이 앨범은 두 달 후인 1981년 10월 15일 유니버설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앨범에는 총 12곡(군가, 연주곡 포함)이 수록되었다. 오종수가 만든 <남몰래 흘리는 눈물>외에 나머지는 모두 하덕규의 창작곡으로 채워져 있다. 거의 대부분 보컬 곡들은 메인보컬 하덕규와 코러스 오종수가 구사하는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파워풀한 화음으로 진행된다. 또한 수록곡들은 하덕규 음악의 특징인 삶을 반영하는 깊이 있는 가사 중심이 아닌, 리듬과 비트 그리고 몽환적 분위기 등 다양한 음악적 탐색과 시도가 도드라진다.
“뒤늦게 알려진 하덕규의 초기 명곡들”
하덕규의 데뷔음반인 이 앨범은 음악적 지향점을 모색했던 열정 넘치고 풋풋했던 그의 습작기를 경험시켜준다. 아직 음악적 노선과 색채가 정립되지 않은 데뷔시절인지라 수록곡들은 대부분 정돈되지 않은 들뜬 분위기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덕규의 보컬은 꾸밈없이 담백하며 기타와 전자 오르간이 주도하는 밴드 세션의 편곡은 파워풀하고 화려하다. 이 음반은 정식 발매 이후 소수의 학생 음악 마니아들만 주목했을 뿐, 일반 대중과는 적극적으로 소통할 기회를 얻지 못한 상업적 실패로 인해 현재 잔존 개체수가 매우 희귀한 상태이다. 발매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짝사랑>, <꽃을 주고 간 사랑>, <님타령>, <남몰래 흘리는 눈물> 등 4곡은 이후 다른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면서 하덕규는 뒤늦게 송라이팅 능력을 담보한 뮤지션으로 서서히 존재가치를 획득했다.
“가수보다 작곡가로 먼저 인지도 획득”
이 앨범의 상업적 실패이후 하덕규는 가수보다는 가수들에게 곡을 제공하는 작곡가로 활동 반경을 넓혀나갔다. 1982년「독도는 우리땅」옴니버스 음반에 종이비행기의 <안녕>, <안녕이라 하지 말아요> 2곡, 같은 해 발표된 사랑과 평화 독집에서는 타이틀곡 <넋나래>를 제공했다. 1983년에는 이명훈 솔로앨범에 <님타령>, <이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2곡을 제공해 히트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또한 1981년 연포가요제때 인연을 맺은 김혁의 1983년 독집에 구전가요처럼 정겨운 느낌의 타이틀곡 <비몽>과 시인과 촌장 1집 수록곡 <그대 목소리>를 제공했다. 타이틀곡으로 수록된 <비몽>은 2002년에 양현경도 리메이크했다. 1985년 이정선의 7집「30대」에 <외로운 밤에 노래를>, 양희은에게 <찔레꽃 피면>, <한계령>, 그리고 남궁옥분에게는 솔로 1집 때 <슬픈 재회>로 발표했던 노래를 <재회>로 제목을 수정해 공전의 빅히트가 터지면서 가요계와 뮤지션들 사이에서 창작능력을 인정받았다.
하덕규 음악의 시작을 알린 공식 데뷔 음반
40년 만에 오리지널 LP포맷으로 재발매된 시인과 촌장 1집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한 2집과 3집에 비해 극소수인지라 희귀 음반으로 대접받고 있다. 실제로 하덕규와 오종수로 구성된 오리지널 시인과 촌장은 독집 발매 후 라디오와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약간의 관심을 끌었지만 일반대중과는 전혀 소통하지 못했다. 특히 오종수가 결혼 후 개인 사업을 위해 도중하차해 활발한 활동이 불가능했다. 하덕규도 생활비 마련을 위해 몇 차례 방송 출연을 했지만, 뮤지션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음악 관계자들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껴 활동 동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덕규가 이 앨범 이후 5년의 긴 공백기를 보낸 것은 그런 음악외적인 실망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 앨범은 1980년대의 중요한 싱어송라이터 하덕규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 데뷔 음반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글 /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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