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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우리는 지난 참사를 잊지 않고,
다음 세대에 안전한 세상을 넘겨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울분이 많은 이유
“자신의 고통이 존중받지 못할 때, 인간은 무너진다”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을 놓고 한국군인과 미국군인의 처지는 극명하게 달랐다. 미국은 참전 이후,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군인들이 많았다.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에 빠지거나 자살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우리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군인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가 미국과 사뭇 다르게 약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채정호 교수는 트라우마는 사회적 맥락의 차이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파병군인에게 국가차원에서 장려하며 애국자로 추켜세웠다. 그러나 미국은 반전 분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군인들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려야 했다. 채정호 교수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 의미를 갖지 못하면 트라우마는 더 깊어진다고 말한다. 즉 주변 사람들과 그 사회가 공감하지 못하면 트라우마의 고통은 더 악화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라우마 경험자들의 고통에 어떻게 다가갔을까? 트라우마 전문가로서 채정호 교수가 바라본 우리사회는 정서적으로 아직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가정과 학교, 직장 등 사회 곳곳에서 트라우마 유발 요인이 너무 많고, 또 트라우마에 대한 감수성도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수많은 트라우마의 고통을 접한다. 지난 참사를 비롯하여 산업재해 생존자, 소방공무원, 지하철 기관사, 성매매 종사자 등이 겪는 고통, 그리고 온?오프상에서 횡행하는 정서폭력 등은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잘 보여준다. 채정호 교수는 이렇게 존중받지 못한 고통은 울분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 울분은 우리에게 낯선 정서가 아니다. 부당함이나 불공정함으로 인해 울분을 겪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채정호 교수는 “울분은 단순한 화나 분노가 아니며, 대개 인격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사건, 너무 부당한 일을 겪으면 외상후울분장애(PTED)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채정호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나타난 특이점으로 울분의 정서를 꼽는다. 보통의 트라우마 사건은 공포나 두려움이 선명하게 부상하는데,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울분'이라는 정서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갑작스런 죽음을 두고 왜 이런 울분을 느끼게 되었을까? 채정호 교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 마땅히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면 되는데, 우리사회는 그 아픔을 품어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자와 유가족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 자체도 힘들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서 내뱉는 '막말'과 '혐오'였다. 일부 정치인이 생각 없이 하는 한마디, 언론의 왜곡된 보도,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유언비어 등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의 상처를 후벼 파며 울분을 자극했다. 트라우마는 그 사회가 고통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채정호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사회가 외면했던 트라우마를 살펴보고, 그 고통이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지를 연구결과와 함께 보여주며 자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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