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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오 독립운동가의 노래 2집 “결”
예술적 기억운동의 아름다운 정화(精華)
시는 역사와 노래 사이에 있다. 아니, 역사와 노래를 동시에 품고 결속한다. 이 음반은 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이나 민족정신 발양에 헌신해온 분들의 내면과 목소리를 담은 시편들에 곡을 입힌 가수 문진오의 두 번째 예술적 기억운동의 결실이다. 따라서 이 음반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역사와 노래가 한 몸이 되는 순간을 실감 있게 경험하게끔 해줄 것이다. 역사와 노래가 만나 이루는 이러한 예술적 승화 과정은 민족정신의 발원과 승화에도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했던 가수 문진오는 이렇듯 역사를 온몸으로 기억하려는 이들에게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간절하게 선사한다.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정신을 호소하기도 하고, 고난의 시대를 살아간 이름 없는 이들의 소망을 처연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이상화, 정지용, 이육사, 윤동주, 신동엽, 김남주의 시편은 저마다 당대 식민권력이나 독재체제의 폭력성에 저항한 사례로서 빛을 발한다.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에서 식민 침탈 상황에 대항하는 민족정서의 시적 실현을 소망했다. 정지용의 고향 은 벌교 출신 채동선이 작곡하여 1930~40년대 최고 인기곡으로 불렸는데, 식민지시대 고향상실감이 짙게 울려나오는 서정적 명편이다. 이육사의 광야 나 윤동주의 서시 는 준열한 시대의식과 내면적 성찰로 어두운 역사에 대응한 첨예한 목소리들이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는 알맹이를 품으면서 외세의 폭력성을 거부한 빼어난 절창이며, 김남주의 죽창가 는 일제에 의한 최초 제노사이드가 동학에서 발원했음을 실증하는 돌올한 목소리이다.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고 “죽창이 되자”고 다짐했던 그날의 함성은 지금도 쟁쟁한 역사적 현재형으로 살아있다. 이분들이 보여준 ‘저항’이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유형무형의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존재값을 지키려는 일련의 사유와 행동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시편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저항의 순금으로 우리의 귀를 울릴 것이다.
신채원의 시 천명, 수운 최제우 는 동학 창시자 수운 선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한 몸 꽃 피워 세상이 봄이라고 말한 선생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고, 빛이 된 사람 해월 최시형 에서도 다음 세대까지 그 ‘빛’이 전해짐을 노래하고 있다. 수운에서 해월로 이어져간 동학이 민족사에서 항구적 ‘빛’이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나아가 겨레의 가슴 손병희 에 이어지는 “겨레의 가슴에/꺼지지 않는 불꽃”이야말로 연면한 동학사와 민족사가 서로 연결됨을 보여준다. 박학봉의 시 최운산 장군 에서는 봉오동전투의 숨은 주역 최운산 장군이 등장하고, 신채원의 시 조선인의 발 에서는 백 년 전 관동대지진 사진첩에서 본 억울한 죽음들을 소환하여 그분들의 “하얀 발”을 “뜨겁게 뜨겁게 뜨겁게 안고” 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김일영의 시 귀향 에서는 끌려간 소녀들의 비극성이 만져지는 듯하다.
우리는 이 음반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100주년을 맞이하여 많은 분들에게 널리 다가가기를 바란다. 30년 음악인생을 넘어서고 있는 가수 문진오 스스로에게도 예술적 기억운동의 아름다운 정화(精華)로 남기를 기대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아름답고 견결한 시와 역사와 노래가, 퇴행과 반동의 우리 시대에, 모두의 잠든 혼을 깨워 일으켜 세우리라 또한 소망해본다.
-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조선인의 발 -1923 관동대지진 사진첩에서](신채원 시/문진오 곡) 노래에 부쳐
이 노래는 민족의 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냈습니다.
2023년은 관동대지진 100년의 해입니다.
관동대지진 당시 왜 계엄령이 내려졌는지를 생각할 때, 학살 사건의 전제로서 30년에 걸친 전사, 즉 동학농민군과의 전쟁 그리고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여 전국을 선혈로 물들였던 의병 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대 일본은 이런 전쟁을 체험하면서 조선을 적대시했습니다.
관동대지진 당시의 학살도 우연히 일어난 조선 민족의 비극이 아닙니다. 민족해방투쟁의 국제화를 배경으로 하는 침략과 저항이 만들어낸 민족 대결입니다. 계엄령은 조선인에 대한 몰살 선언과도 같습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는 1923년에 일어난 사건으로만 한정하면 안 됩니다. 그 이전부터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벌인 일본의 선전 포고 없이 일으킨 한일 간의 전쟁입니다. 동학농민전쟁과 의병 전쟁의 연속 과정에서 이루어진 학살이었습니다.
조선인 학살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의 문제를 회피하고서는 이해될 수 없으며, 동시에 조선 민중의 해방 투쟁과 분리해서는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어렵습니다. 학살과 식민지 지배, 민족해방투쟁의 고양은 명확한 인과 관계로 연결됩니다. 관동대지진에서의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05년 이후의 식민지 지배와 이를 보완한 일본 민중이 강력한 적, 조선 민중을 두려워한 것에서 발생한 집단 살인이고, 민족 범죄였습니다. 한일 간의 부조리한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돌출한 또 하나의 잔혹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아픔,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민중들의 끈질긴 투쟁의 울림이기도 합니다.
- 이규수(역사학자.히토쓰바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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