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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레코드 명반 재발매시리즈
이수미 스테레오골든앨범 vol.1 「여고시절」 LP 재발매!!
1970년대 초반 ‘여고시절’이라는 노래 하나로 일약 국민여가수로 급부상하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여가수 이수미는 그 당시 가장 잘 나가는 톱스타였다.
지난 1969년 목포 KBS ‘노래자랑’을 통해 데뷔했던 이수미는 당시 목포여고 3학년에 재학중이었으며 언니들 옷을 빌려 입고 가발을 뒤집어 쓴 채 무대에 올랐다. 뛰어난 노래실력을 지녔던 그녀는 5주 연속 우승으로 이듬해 목포 MBC ‘연말 노래자랑 결산 방송’을 보러 온 한 음반사 사장의 눈에 띄어 데뷔하게 되었다. 그러나 1971년 데뷔 앨범 <때늦은 후회지만>발표하고 트로트 가수로 시작한 그녀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1972년 2월 발표한 앨범 <여고시절>에서 스탠다드팝 계열의 곡 ‘여고시절’이 히트하면서 그녀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졸업시즌과 맞물리면서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되었다. 그해 연말, 신인가수상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MBC 10대 가수와 TBC 7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기며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뛰어난 노래솜씨와 청순가련한 미모에 섹시한 목소리는 젊은 남성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김추자, 정미조와 함께 여가수 트로이카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불운의 연속으로 그녀의 가수생활은 그리 순탄치가 못하였다.
1973년 여름, 각 언론 지면엔 ‘가수 이수미, 대천해수욕장 면도칼 자해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인기는 하락하고 말았다. 더구나 문제가 커지자 가수협회에서는 그녀를 제명했다. 피해자였음에도 자해범으로 내몰린 채 사건은 종결됐다.
1년여의 제재가 풀리고 노래 ‘내 곁에 있어주’(1974)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 곡으로 1975년 MBC 10대 가수상, 1975년 TBC 최고 여자가수상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지만 1976년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다시 연루돼 7년 동안 활동이 금지된 것이다. 이것 역시 대마초를 핀 연예인들과 가깝게 지내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내려진 결정이었다고 한다.
이후 백화점 점원과 밤무대 가수로 재기를 꿈꾸지만 5공시절 사회정화추진위원회의 징계(1982)로 다시 눈물을 삼키게 된다.
이후 그녀의 노래가 SBS 시트콤 <여고시절>에 나오면서, 이수미의 ‘여고시절’이 젊은 세대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수미에 대해서 재조명되면서 그동안 잊혀졌던 노래들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 LP로 재발매되는 이수미의 「여고시절」은 오아시스 레코드의 오리지널 마스터로 제작되며 블루 컬러 한정반으로 제작되며 프랑스에서 제작하였습니다.
[사양]
*제작국 : 프랑스
*무게 : 180g 중량반
*폴리 페이퍼 이너슬리브
* Transparent Blue Color Vin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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