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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고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도전한다!
어떤 것을 확실히 알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인식한다. 그런가? 우리는 하늘이 푸르다는 것, 또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는 것, 또는 2001년 9월 11일 아침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안다. 왜냐하면 그냥 알기 때문이다. 지식은 일반적으로 상식이란 단어와 통한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로 하면 ‘아는 이치’이다. ‘하늘이 파랗다’는 문장을 우리는 어떤 직관으로 대하는가.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양극단의 크레바스에서 우리들 각각은 무슨 확신을 가지고 판단하는가.
저자는 ‘확신’이란 감, 즉 느낌의 허상을 지적하기 위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연구사례를 단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섬광기억을 연구한 심리학자 울릭 나이서가 챌린저호 폭발과 관련해 106명의 학생에게 기억을 적으라고 하고, 2년 반 뒤 다시금 그 정확성을 확인해본다. 25퍼센트의 학생의 기억은 적은 내용과 깜짝 놀랄 만큼 달랐고, 오직 10퍼센트의 학생만이 세부사항을 정확히 기억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쓴 일지를 보고도, 자신의 틀린 회상이 맞다고 확신했다. 더욱이 한 학생은 자신의 글씨는 맞는데, 쓴 적이 없다고까지 한다.
저자는 이 맹목적 확신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어떻게 느껴지든지 간에 확신이란 의식적인 선택도 아니고 사고 과정조차도 아니다. 확신과 ‘우리가 뭘 아는지를 알고 있는’ 유사한 상태들은 마치 사랑이나 분노처럼 이성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무의식적인 뇌의 기제들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다, 맞다, 확신한다, 확실하다는 느낌들은 신중한 결론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정신적 감각들로서, 사고보다 앞서서 일어난다. 그러나 마치 그 느낌이 사고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뭘 아는지를 아는 방식의 본질과 한계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일으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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