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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소설』은 하나의 사건이다!”
문학의 금기와 억압에 맞선 젊은 작가들의 특별한 소설집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무명의 작가가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그가 죽은 뒤 에밀 아자르가 실은 20년 전에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 로맹 가리였음이 밝혀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 “한바탕 잘 놀았다”는 유서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2013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가 익명으로 추리소설을 펴냈다. 독자와 평자들의 반응은 미미한 정도였다. 두 달 뒤 그 작가가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앤 K. 롤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소설은 품절 사태를 일으켰다.
이처럼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시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작가의 익명성은 종종 이용되어왔다. 생각해보면 자신을 완전히 숨긴 채 비밀스런 상상력을 가동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누군가의 억압,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 때때로 익명성은 좋은 출구가 될 수 있다.
이번에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익명소설』은 바로 그러한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소설집이다. 오늘날 우리 문학의 최전방에서 맹활약 중인 젊은 작가들의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열정, 패기를 엿볼 수 있기에 더욱더 출간의 의미가 크다. 『익명소설』은 문학적 실험을 만류하는 문단과 출판계의 분위기 속에서 쓰고 싶은 글을 못 쓰고 있다는 작가들의 토로에서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정형화된 문장에 대한 강요, 장르적 요소에 대한 거부, 정치적 풍자를 걷어내라는 압박, 개연성에 입각한 사실주의에 대한 강박, 에로티시즘을 저급하게 취급하는 가부장적인 분위기 등 이른바 ‘점잖은 문학’을 요구하는 출판계와 독자의 제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욕구의 산물인 셈이다.
기존의 이미지 때문에 시도할 수 없었던 스타일의 작품을 마음껏 쓸 수 있고,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익명소설』은 작가들에게 더없이 즐겁고 파격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독자에게는 익명 작가가 누구인지 추리해보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독자가 작가의 명성에 눌리지 않고 솔직한 감상을 말할 수 있다는 점도 이 기획의 특징이다. ‘작가 브랜드’를 버리고 온전히 작품 자체로만 인정받고자 한 실험적인 작품집이라는 점에서 『익명소설』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신선한 문학적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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