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이미지
이전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감시에 가담하고 있다
감시는 사람들을 분류하고 등급을 나누는 하나의 수단이다
감시는 늘 우리 대다수가 동의할 만한 일정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 누리는 거래와 소통의 효율성·편리함은 오늘날 삶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감시는 바로 이런 효율성과 편리함에 동반된다. 감시는 단순히 억압과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영향력과 설득, 그리고 매력의 문제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감시에 가담하고 있다. 우리는 흔적과 자취를 남기고, 다양한 감시 기관들이 이를 탐지하고 조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서 감시의 밀도가 점점 커지는 것은 일부 자본가들의 음모나 금권주의적 충동의 해악이 아니라 이동성과 속도, 안전과 소비자의 자유를 선호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 스스로 조성한 복잡한 정치경제적 관계의 산물이다.
오늘날 감시는 단순히 사적 공간을 침범하거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분류하고 등급을 나누는 하나의 수단이다. 이런 분류는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할지, 그 자격과 접근권을 결정하기 위해 사람들을 거침없이 선별·감시·서열화하기 때문이다. 감시는 삶의 기회와 사회적 운명에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 되어 왔다. 그 결과 일부는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제 감시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사회정의와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잠재적 위협과 현재 이뤄지고 있는 감시에 대한 원칙 있는 자각을 요구한다. 감시라는 함정을 통과해 이론과 정치 모두를 안내하는 윤리는 다시금 ‘살아 있는 구체적 개인’을 바탕으로 하게 될 것이다.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함의가 있다. 하나는, 소통 윤리에서 대면 접촉이라는 개념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타자the Other에 대한 관심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별하는] 인간다움의 원초적인 요구라는 것이다. 전자적으로 확장된 이방인들의 사회가 기존의 고전적인 인종적 혹은 계급적 정형화에 더해 ‘낯섦’strangeness이라는 범주를 창출할 때, 타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요구는 내버릴 것이 아니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런 특성은 또한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만든다.
『감시사회로의 유혹』 보러 가기 클릭
닫기
수량감소
수량증가
15,300
원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총
1
개
15,300
원
카트에 넣기
바로구매
선물함에 넣기
바로 선물하기
나에게 선물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