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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아이히만은 1932년 비밀 나치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하인리히 히믈러가 조직한 나치 친위대(SS) 정예부대에 들어갔다. 히믈러가 국가안전국(RSHA)을 창설했을 때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담당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1942년 1월 베를린 근교에서 나치 고위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에 필요한 계획과 병참업무 준비에 관한 회의를 열었는데, 아이히만은 이 문제의 책임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대량학살을 뜻하는 이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쟁 뒤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이송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는데, 1961년 4월 11일부터 시작된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아이히만은 뜻밖에 평범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나 아렌트도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믿지 못했지만 결국 그 소식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렌트는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로써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그에 앞서 있었던 경찰심문에서 보인 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흥미로운,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그는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판단의 규칙을 마치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언어규칙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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