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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정악단 연주자로 풍류음악을 연주해오면서 저의 고민은 늘 게속되었고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풍류라는 음악을 어떻게 인식하고 연주 할 것인가, 더 이상 풍류에 관한 의미있는 담론은 불가능한 것인가...
아무 것도 모른 채 정간보의 한음 한음을 읽어나가며 처음 풍류를 접했고, 어떠한 의구심도 어떠한 정체성도 없이 한동안 그 음악을 습관처럼 연주했습니다.
하나 둘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공부를 해나갈수록, 저의 무지함을 깨닫고 답을 얻는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더욱더 미궁으로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고악보와 현 음악의 알 수 없는 시간의 공백, 이론과 실제 연주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에 혼란스러웠고, 같은 뿌리지만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음악들이 갖는 비교 불가능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어떤 장르보다도 흥미로운 학습과 창의적인 연주가 가능한 풍류라는 음악이 더 이상 공부할 것 없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장르로 인식되어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한때는 이 땅에 360여개의 풍류가 존재했으며, 전국 각지의 어느 풍류객들이 서로 처음 만나 음악을 시작하여도 각자의 개성이 담긴 선율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바탕의 풍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우리의 줄풍류 안에는 각자의 독창성과 인악성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며, 세속의 잣대를 떠나 오직 음악 안에서 마음을 나누었던 멋스러운 선비 정신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음악은 이미 창의적이며 자유로웠고, 우월하거나 하등함이 없었으며,특히, 음악을 업으로 삼았던 이들은 악기간의 깊은 음악적 이해와 출중한 음악성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개성있는 가락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현 시대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음악의 참 모습 또한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런지요.
저의 첫 음반을 통해 풍류의 다양성을 향한 작은 발걸음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이 마약한 시도를 발판으로 보다 많은 동료들이, 후배들이 흥겨운 마음으로, 또한 진지한 태도로, 저보다 더욱 훌륭한 그들만의 풍류를 만들어 나가고, 그것을 통해 악보 안에 머무는 음악이 아닌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풍류 음악, 더 나아가 순수하고 고귀한 풍류정신을 향유하길 바래봅니다.
앨범 해설
1. 고수영의 줄풍류 Ⅰ
현존하는 각각의 풍류들은 서로 매우 유사한 진행을 보이는 현악기 선율을 바탕으로 하여, 관악기 선율이 서로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즉, 관악기 선율이 현악기 선율과 동일한 부분의 비율이 각 풍류마다 다르며, 저마다 개인적인 선율과 독특한 표현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풍류 음악이 관·현악기 선율을 넘나들며 연주주체에 따른 변주 방식을 통해 완성된 음악이며, 개인의 취향과 음악성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연주가 가능한 생명력 있는 음악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풍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들이 생겨났고 그 생각들을 하나 둘 실행에 옮기고 싶었습니다.
지난 2014년 독주회에서는 저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줄풍류의 변주 방식과 열린 음악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새롭게 연주하는 ‘줄풍류’의 한 예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그와 연장선상에 있는 이번 음반에서는 가야금과 단소, 해금만으로 음향적으로는 소박하지만 조금 더 움직임 있는 풍류를 만들어보고자 하였습니다.
가야금은 현행 향제풍류의 가야금선율과 가깝다는 동대가야금보의 선율을 사용하였는데, 현행 국악원 풍류보다 잔가락이 많고 관악기 선율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다채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소는 구례향제줄풍류의 단소 선율과 30년대 조선악단의 대금 선율을 함께 사용하였는데 구례향제줄풍류 특유의 깊은 농음과 철성, 개성 있는 가락들이 무척 화려하면서도 해금, 가야금 선율을 감싸는 듯 잘 어우러집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해금이 본래 영산회상 상영산의 선율보다 한 옥타브 높게, 즉, 세령산 이하 타령까지와 동일한 음역으로 시작하고 중영산 이후 군악까지 현악기와 관악기 선율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연주하였습니다. 농음과 시김새 또한 조금 더 과감하게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녹음은 한 공간에서 끊어짐 없이 한 호흡으로 연주함으로써 실제연주와 같은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2. 국립국악원 줄풍류
현재 국악원에서 연주되고 있는 중광지곡 선율로 거문고와 해금의 이중주를 담아보았습니다.
어떤 곡을 연주하든 그 곡의 본질을 이해하고 시김새를 결정하고 해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론과 실제 연주 사이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곡의 경우에는 그 일이 더욱 어려워지기 마련입니다. 영산회상의 경우 그 조(調)에 관한 학자들의 의견부터가 매우 분분하므로 각각의 주장을 살펴보고 악기간의 실제연주와 비교, 취사선택하여 연주의 갈피를 잡는 일부터가 아주 녹록치 않은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현재 ‘상령산’에 관해서는 5음음계 황종궁계면조, 3음음계 황종궁계면조, 황종궁과 임종궁의 복합계면조, 임종궁계면조, 황종궁평조, 중려궁평조 등의 분석이 있고 ‘중령산~타령’에 관해서는 복합계면조, 중려궁평조, 임종궁 계면조, 마지막으로 ‘군악’에 관해서는 태주궁평조, 태주궁계면조, 임종궁평조 등의 분석이 있습니다.
본래 악학궤범에 기록된 영산회상의 조는 황종궁계면조이며 그 음계는 ‘황 협 중 임 무’의 5음 음계이나, 현행 영산회상은 현재 그 음계가 ‘황 태 중 임 무’로 변질되었고 그러면서 궁과 바로 윗음 협종 사이의 단3도라는 계면조의 특성이 흐려졌습니다. 이는 조(調)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낳았고, 계면조 음악을 평조처럼 연주하게 만들 수 있는 원인이 되었다고 하겠으나, 음계의 변질에도 불구하고 영산회상은 여전히 평조와 확연히 구별되는 계면조의 시김새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악조에 관한 이론을 떠나 연주에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분석된 선행연구와 음원, 연주들을 통해 제가 정리한 황종계면조 시김새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궁인 황종에서 농음(요성)을 하고, 둘째, 임종은 황종평조의 임종과 달리 그 음고가 낮아야하며, 중려로 진행할 때 반드시 퇴성, 혹은 서서히 하행하듯 풀어 내리는 농음(요성)을 사용합니다. 셋째, 임종의 음고가 낮음에 따라 중려는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지는데, 중려는 실제적으로 평조의 중려에 비해 궁인 황종과의 거리가 더 멀다는 측정치를 얻고 있습니다. 또한 태주로 하행진행 할 때 황종평조에서처럼 음을 끌어내리지 않으며, 곧게 뻗거나 추성을 해주고 하행합니다.
이상의 공통적 시김새 외의 음악적 현상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빅터 유성기원반(1930년대)의 조선악단, 조선정악전습소의 음악에서는 중려와 임종 간의 음 간격이 좁고 황종과 임종의 농음(요성)이 굵은 반면, 추퇴성의 경우는 70년대 이후에 비해 명확하지 않게 들립니다. 근래로 가까워질수록 추퇴성의 표현은 풍성해진 반면, 국립국악원 이외의 자료에서는 구성음의 간격이 평균율에 가까워진 개인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현악기의 경우, 궁인 황종과 궁의 4도 아래 음인 임종에만 농음(요성)을 사용하며 중려의 경우 농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관악기의 경우 심심찮게 중려에 농음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허나 이것은 황종과 임종에 사용하는 굵은 농음의 개념이라기보다, 긴 음을 끌어갈 때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음을 매만져 다스리는 얕은 음의 파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현 시대의 연주에서는 현악기의 경우에도 역시 관악기와의 호흡을 맞추고 풍성 표현을 가미하기 위해 중려에 얇은 농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즉, 1930년대 이후 현재까지 남아있는 연주기록들은, 음계의 변질에도 불구하고 앞서 나열한 황종계면조의 표현양식이 대부분 지켜지고 있으며 상영산 및 중영산 이하 타령까지의 곡에 일괄적으로 적용되어지고 있어, 중영산 이후 음역은 올라가지만 조가 변화한다는 느낌을 받기 힘듭니다. 만약 조가 변화한다면 그 음계의 구성음들마다의 시김새, 즉 음의 성질 내지 역할 역시 달라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저의 연주는 상령산부터 타령까지를 황종계면조로 인식하고 행해지며, 앞서 나열한 황종계면조의 시김새를 지켜 연주하였습니다. 따라서 해금의 특성상 운지법의 이동이 있다하여도, 조가 변하지 않는 한 그 시김새에 변화를 두지 않으려합니다. 즉, 손가락 번호에 맞춰 표현을 통일하지 않으며, 상행 혹은 하행 진행에 의해 추성이나 퇴성을 정하지 않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군악 또한 학자들마다 그 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그 어느 조에도 들어맞지 않는 음계와 시김새를 지닌 채 연주되고 있어 그 실체를 알아차리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향제줄풍류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여타의 곡들에 비해 음계와 선율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군악의 연주에 대한 인식의 정립 또한 연주자로서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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