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 1, 2, 3 위대한 전사에서 위대한 왕으로, 그리고 신화의 주인공으로 남은 알렉산더 대왕을 빼놓고, 인간 정복의 역사를 논할 순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로 세련된 정치가이자 능숙한 전략가이며, 잔인한 전사였던 알렉산더 대왕. 그는 마케도니아라는 작은 국가의 젊은 왕으로서 광활한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그리스 문명을 인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전파하며, 당당히 신화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알렉산더는 위대한 정복자인 동시에 덕을 잃지 않았던 위대한 군주의 모습으로 정치적 신화가 되었고, 여러 문화의 융합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신화로 남았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지닌 알렉산더 대왕의 삶은 서른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그라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는 로마의 정치가들로부터 루이 14세, 나폴레옹, 빅토르 위고, 구스타브 모로, 앤디 위홀, 데오 앙겔로풀로스, 백남준에 이르기까지 2천 년이 넘게 예술가들을 비롯해서, 작가, 정치인들을 매혹시켰으며, 그들을 통해 정치적 철학적, 문화적, 종교적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만약 알렉산더 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만든다면, 끝없는 말발굽 소리와 전사들의 외침, 시끌벅적한 술판 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4살에 마케도니아의 전사가 됐고, 16살에 전투에서 이름을 떨쳤으며, 20살에 왕이 되어 4만 대군을 이끌고 정복 전쟁에 나선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었다. 32살의 젊은 나이에 알렉산더 대왕은 인류 문명의 흐름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2천 년 전,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함으로써,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했고, 로마 제국 건설의 기반을 닦아주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에 대해선 오늘날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의 위대한 문명 수호자였을까? 아니면 고대 문화의 파괴자였을까? 위대한 군주였을까? 아니면 잔인한 폭군이었을까?
카이사르, 갈리아를 꺾다 BC 50년경 오랜 저항 끝에 켈트 부족이었던 갈리아인은 로마 군대에 굴복하고 만다. 9년이 넘는 동안 로마인들은 갈리아인 백만 명을 죽이고 백만 명을 노예로 삼았다.
갈리아를 정복한 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BC 60년 집정관에 선출된 카이사르는 집정관을 지낸 후 갈리아키살피나와 갈리아트란살피나, 일리리쿰 지방을 5년 동안 통치하지만 북부 켈트와 벨기에를 원했다. BC 57년 벨기에 정복에 성공한 카이사르는 53년 갈리아 반란을 진압하지만, 52년 위기를 맞는다. 켈트족의 일파였던 아르베르니족의 족장으로 베르킨게토릭스가 등장한 후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로마군은 알레시아에서 베르킨게토릭스를 포위한다. 알레시아에 갈리아 대군이 몰려오지만 로마군은 이들을 격퇴하고 결국 베르킨게토릭스는 투항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으로 세계 정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유럽의 정복자 나폴레옹 정복자하면 나폴레옹을 떠올리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서유럽인들을 일깨운 해방자라고 지칭했다. 프랑스의 최고 권좌에 오르고 이탈리아, 이집트, 오스트리아, 러시아 원정을 강행했던 나폴레옹은 평민에서 황제의 위치까지 올라섰다. 유난히 작은 체구로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정복한 나폴레옹. 그의 수많은 전과 중, 특히 뛰어난 전술과 기개로 엄청난 대군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대파해, 빛나는 승리를 거둔 아우스터리츠의 전투를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