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이미지
이전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모차르트가 파리(1763~64)와 런던(1764), 헤이그(1766)에서 요한 쇼베르트(Johann Schobert)와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에게 헌정한 초기 바이올린 소나타 16곡을 썼을 때, 그는 큰 환영을 받는 신동으로 성공적인 유럽 연주 여행을 다니는 중이었다. 1764년에 파리에서 작품번호 1번으로 출판된 작품집의 정식 제목은 ‘바이올린 반주와 함께 연주할 수도 있는 건반 소나타(Sonates pour le Clavecin, qui peuvent se jouer avec l'Accompagnement de Violon)’였다. 실제로 이 소나타와 이어지는 소나타들의 바이올린 파트는 소박한 편이며 건반 파트를 소심하게 흉내 내는 데 그친다. 3포지션 이상을 연주하는 부분이 없고 빠른 패시지가 길게 이어지는 부분도 없으며, 화성 연주도 매우 드물게만 쓰인다. 또 이 소나타들의 양식을 볼 때 이 초기 작품들 중 여섯 악장은 본래 피아노 독주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다.
소나타 K.301~306
모차르트가 바이올린 반주가 붙은 건반 소나타를 작곡했을 당시 바이올린 소나타라는 양식이 아직 그 초창기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그 후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양식의 발전에 다시 뛰어들어 작품을 썼는데, 1778년 2월 14일에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이를 ‘건반과 바이올린 이중주(Clavier duetti mit Violin)’라고 불렀다.
위르겐 훈케묄러(Jurgen Hunkemoller)는 1970년 베를린에서 출판된 자신의 저서 '바이올린과 건반을 위한 모차르트의 초기 소나타들'에서 이 기간 동안 모차르트가 바이올린 소나타 형식을 ‘바이올린과 건반을 위한 소나타’로 발전시키는 데 ‘선두 주자’가 되었다고 평했다. 몇몇 동시대인들(페르난도 펠레그리니, 루이지 보케리니, 요한 크리슽프 프리드리히 바흐)이 쓴 바이올린 소나타가 그런 새로운 발전의 문턱까지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피아노의 우위를 끝내고 두 악기가 동등한 입장이 된 것은 모차르트가 파리와 만하임에서 쓴 소나타가 최초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요제프 슈스터(Joseph Schuster)가 쓴 몇몇 ‘2중주’를 모범으로 삼았다고 인정했다. 슈스터는 당시 만하임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작곡가였지만 현재 작품은 남아있지 않다.
22살 청년 모차르트가 만하임에서 쓴 바이올린 소나타들(G장조 K.301, E플랫장조 K.302, C장조 K.303, A장조 K.305)은 만하임 양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그가 저 유명한 ‘만하임 크레센도’에 대해서 그저 유행을 따른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는 만하임에서 쓴 네 작품에 1778년 여름에 파리에서 쓴 두 곡(E단조 K.304, D장조 K.306)을 덧붙여 파리에서 한 세트로 출판했다. 두 악기가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는 이 소나타 연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G장조(K.301)이다. 1악장에서 두 악기는 서로 역할을 주고받는데, 바이올린이 첫 주제를 연주한 후에는 바로 피아노가 주제를 이어받으면서 바이올린은 반주를 담당한다. 그런가 하면 2악장의 론도에서는 바이올린이 피아노가 연주하는 선율을 이어받기도 한다. 또한 이 소나타들에서 모차르트가 바이올린의 다양한 음역과 활쓰기 효과 및 음역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데, 그런 점에서 동등한 파트너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화라는 새로운 양식이 바이올린 연주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발전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피아노 소나타의 경우 악장 숫자가 세 개 이하인 경우가 없지만, 모차르트는 만하임과 파리에서 쓴 대부분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와 요제프 슈스터의 선례를 따라 두 개의 악장만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하지만 예술적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피아노 소나타와 바이올린 소나타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많다. 가령 E단조 바이올린 소나타(K.304)와 이보다 살짝 늦게 만들어진 A단조 피아노 소나타(K.310)는 완벽한 대응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서 모차르트는 힘찬 내면적 감정 표현을 통해 궁정 풍의 인위적인 형식이 지닌 한계를 벗어났다. 아직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이기는 했지만, 그 비통한 개인적 경험이 두 소나타 작품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변주곡 K.360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결별한 후 첫 몇 달 동안에(그러니까 빈 시대의 초창기에) 프랑스 노래 ‘아, 나는 연인을 잃었다(Helas, j’ai perdu mon amant!)’ 주제에 의한 변주곡(K.360)을 썼다. 조르주 드 생푸아(Georges de Saint-Foix)는 작품 안에 ‘분숫가에서(Au bord d’une fontaine)’라는 노래에 의한 변주곡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25살 청년 모차르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작곡가로서 홀로 서기 위해서 때때로 예술적인 진실함을 잃지 않고서도 대중의 취향에 부응하는 작품을 썼다. 18세기 후반 빈의 음악 시장에는 변주곡 형식의 작품들이 흘러넘쳤다. 변주곡 형식이 이처럼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것은 주제가 변모하는 마법을 통해 대중에게 어렵지 않은 유흥거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귀에 익숙하고 인기가 많은 선율과 유행하는 노래를 인용한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였다.
소나타 K.296 & K.376~380
파리와 만하임에서 쓴 소나타들이 출판된 지 몇 년 후 모차르트는 빈 출신 피아니스트 요제피네 폰 아우른함머(Josephine von Aurnhammer)에게 헌정한 여섯 개의 새로운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 아르타리아(Artaria)에서 작품집을 출판한 이후 카를 프리드리히 크라머(Carl Friedrich Cramer)가 운영하는 '음악 잡지(Magazin der Musik)'라는 잡지에는 다음과 같은 익명의 비평가가 쓴 글이 실렸다. ‘이 독창적인 작품들에서 바이올린 반주는 건반 파트와 절묘하게 엮여 있어서 언제나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소나타들을 연주하려면 건반 못지않게 바이올린에서도 능숙한 연주자가 필요하다’ 이 작품들과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는 사실상 독립적인 음악 형식으로 그 지위를 굳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번호 1번의 파리 및 만하임 소나타에서 갈라진 것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보다 이른 1778년 3월 만하임에서 쓴 C장조 소나타(K.296) 역시 나중에 만들어진 작품과 함께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형식 면에서 볼 때 1781년에 나온 소나타들은 기존의 어떤 것과도 들어맞지 않는다. 가령 3악장으로 이루어진 F장조 소나타(K.376)를 보면 새로운 주제 선율이 발전부의 서두에 가서야 등장한다. 역시 F장조로 된 또 다른 소나타(K.377)와 G장조 소나타(K.379)는 변주곡 악장이 들어있다는 것 말고도 전형적인 프랑스 양식에 따라 악장을 자유롭게 배열한 것이 공통점이다. G장조 소나타는 장엄한 아다지오가 등장한 다음 정열적인 알레그로가 이어지며, 그 뒤에는 로코코 풍의 명쾌한 변주곡들이 이어진다. 더 나중에 나온 소나타들과 비교하면 콘체르탄테 요소가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E플랫장조 소나타(K.380)는 화려한 콘체르탄테 풍의 알레그로로 시작되고 있다.
소나타 K.454, 481, 526
모차르트가 소나타를 출판하면서 여러 개를 묶은 작품집에서 점차 단독 작품으로 바꾼 것은 당시의 역사적-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작품번호 1번과 2번의 작품집은 당시의 관습에 따라 각각 여섯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묶었다. 하지만 1784년 봄에 만들어진 B플랫장조 소나타(K.454)는 두 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출판되었으며 이어지는 E플랫장조(K.481)와 A장조(K.526) 소나타 두 곡은 1785년과 1787년에 단독으로 출판되었다. 모차르트가 쓴 마지막 바이올린 소나타에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화를 나누는 원칙이 더욱 굳건하게 확립되었으며 두 악기는 이제 이상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다만 콘체르탄테 요소는 사실상 새로운 것이었다. 모차르트가 요제프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빈 ‘아카데미(Akademie)’ 연주회에서 23살의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레지나 스트리나사키(Regina Strinasacchi)와 함께 처음 소개했던 B플랫장조 소나타를 보면 1악장과 3악장에 콘체르탄테 요소가 깊이 배어 있으며, 3악장은 화려한 코다로 이어진다. 그런가 하면 A장조 소나타(K.526)에서는 명인기적인 론도가 주목을 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순전히 연주회용 소나타로 분류한다면 틀린 말이 될 것이다. 모차르트는 여기서도 아마추어 음악가들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B플랫장조 소나타(K.454)의 악보에 실린 출판사의 안내문을 보면 이 출판물이 ‘아마추어들에게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도록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을 아주 단호하게 강조하고 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트리오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음악 연주에 확고한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A장조 소나타(K.526)를 쓰고 1년 후에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파트가 붙어 있는, 초보자를 위한 작은 건반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최후의 바이올린 소나타인 F장조(K.547)를 썼다. 이 작품은 이번 녹음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 하이브리드 작품에는 작곡가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려는 거의 필사적인 노력이 담겨 있다는 일리 있는 주장을 모차르트 학자들이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다른 후기 바이올린 소나타들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또 2악장과 3악장은 의심할 여지없이 본래 피아노 독주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며, 어쨌거나 여기서 바이올린은 결코 피아노와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다.
- 한스 크리스토프 보르프스(Hans Christoph Wor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