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이미지
이전
헝가리에서 남긴 리히테르의 연대기적 칼레이도스코프
1954년 3월 8일 슈만 피아노 협주곡부터 1993년 11월 그리스 서정 모음곡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가진 연주회를 헝가리 라디오가 녹음한 음원들을 14CD로 묶어 발매한 역사적인 기록물.
BMC 레이블로 발매된 이 기념비적인 박스물은 메이저 레이블에서 발매된 리히테르의 전집물들보다 더 콜렉터들의 수집욕을 자극하는데, 그것은 바로 다양한 레퍼토리와 완성도 높은 연주들이 수록되어 있음은 물론, 무엇보다도 자켓의 디자인과 정성스러운 만듬새, 상세한 해설지 등으로 리히테르의 예술을 온전히 새로 태어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CDR반으로 돌아다니던 리히테르의 헝가리 음원들과는 전혀 다른, 깨끗하면서도 명료한 리마스터링을 거치면서 그의 거인적이면서도 거장적인 음악을 정확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유니버셜과 워너, RCA의 박스들, 프라하 박스와 멜로디야 박스 등과 더불어 리히테르 박스물의 대표적인 이 헝가리 박스를 갖추어야 진정한 리히테르 애호가로의 의무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헝가리 박스가 실로 오랜만에 국내 재수입되면서 그 절호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50년대 레코딩들은 동시대 멜로디야 레코딩들보다 훨씬 음질이 좋은 편이라 리히테르의 벽력과 같은 터치 및 그 안에서 피어나는 섬세한 뉘앙스가 돋보인다. 특히 1958년 리사이틀은 음질과 음악 모두 훌륭한데, 슈베르트 D.958은 리히테르의 최고 슈베르트 소나타 연주로 손꼽아도 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슈만의 토카타는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날카롭고 거인적이다. 1954년과 1973년의 바흐 평균율은 느림부터 격렬함까지 모두 아우르는 명연으로서 전곡이 녹음되지 않음이 매우 안타깝다.
한편 1960년대 녹음 가운데 쇼스타코비치의 전주곡과 푸가 및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이 인상적이다. 그의 육체와 정신이 절정에 달해 있을 당시 기록으로서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이 음반에서 통감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의 리스트와 베토벤은 테크닉의 한계를 넘어선 리히테르의 정신성이 빛을 발하는 보물과 같은 기록으로서, 특히 베토벤은 그의 라이프치히 실황과 어깨를 견줄 만한 초절명연이다. 993년 11월 9일 부다페스트 콘그레스 센터에서의 실황인 그리그의 서정 소곡집은 Live Classics의 음원과 더불어 만년에 그가 새롭게 발견한 그만의 서정성을 대표하는 감동적인 연주다.
이 모든 음원 하나하나가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리히테르의 역사적인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