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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라는 물감으로 시공간의 캔버스에 펼치는 그림
황보령의 음악은 그림 같다. 음악가인 동시에 미술가라는 복합적인 정체성이 반영됐다는 식의 비약적인 유추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여겨진다. 음악을 듣고 어떤 이미지 혹은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기보다는, 소리 하나하나가 겹쳐지는 것에서 붓을 들고 섬세하게 획을 더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녀의 네 번째 앨범 'Mana Wind'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장을 그려서 병풍처럼 펼쳐놓은 연작(連作)처럼 보인다. 도시의 쓸쓸한 변두리 풍경이 생각나는 연주곡 '겨울밤'을 시작으로, 꿈결을 헤매는 것처럼 아득하게 아름다운 'Dream Up', 탄력 있는 리듬과 황보령의 목소리 사이에서 '두 번째 달 바드' 박혜리의 아이리시 휘슬이 매끈하게 날아다니는 'Do U' 등 각각의 곡이 만들어내는 그림의 이미지는 다르다. 어떤 곡이 신경질적으로 물감을 흩뿌린 인상을 주는 추상화라면, 또 다른 건 색채보다는 선 위주로 단출하게 그린 드로잉, 혹은 거대하고 광활한 벽화가 연상되는 식이다.
적절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열세 곡을 하나의 분위기로 아우르는 것은 몽롱함이다. 메아리처럼 되풀이되는 전자음과 리버브는 황보령 특유의 툭툭 끊어지는 보컬과 맞물려 앨범 내내 듣는 사람에게 기묘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I'Ll Always'이나 'Wind'처럼 일렉트릭 기타가 전면에 튀어나와 상대적으로 거칠거나 직선적인 흐름을 타는 곡들도 마찬가지, 말로 포착하기 힘든 모호함과 투명함으로 옅게 둘러싸여 있다. 마치 세상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듯한, 8분이 넘는 초현실적인 연주곡 'Laconic Phrase'는 그 정점이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돌아와 가사를 썼다는 마지막 곡 'Horison'은 일종의 진혼곡임에도 귀에 꽂히는 비트와 몽롱한 거리감 때문에 오히려 더 애틋하다.
황보령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하고 무심하다. 그러나 그것은 황량함으로 흐르는 어두운 허무와는 거리가 멀다. 앨범의 타이틀 곡 제목인 바람처럼 관조적이다. 그것은 테크닉이나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2년 전 데뷔앨범에서 사방으로 치닫던 거침없는 에너지는 점차 안으로 수습되어 단단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가사는 예전부터 그랬듯 복잡하지 않고 불필요한 수식이 전혀 없다. 영어가사가 많지만 중학생 수준만 되어도 해석이 어렵지 않다. 직관적이고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단순하다. 게다가 곡의 길이에 비해 가사가 짧고 여백이 많다.
말하자면 황보령은 그 여백에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말과 말 사이의 빈 시공간을 캔버스로 삼고, 소리를 살아 있는 물감으로 바꾸어 그려내는 그림을.
-월간 Paper 에디터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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