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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가와 철학자’ 뇌섹남, 독설남, 완벽남
첼리비다케(1912~96)의 모든 것
(1950~1994년 영상 모음-세르주 첼리비다케 13DVD 박스물)
▶ 1950~1994년 영상 모음-세르주 첼리비다케의 모든것
그동안 유로아츠, 아트하우스, 오푸스아르떼 등에서 발매된 세르주 첼리비다케(1912~1996)를 13장의 DVD에 모은 스페셜 박스물이다.
브루크너 4번·5번·7번·9번,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드보르자크 ‘신세계’,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2번과 슈만·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외 라벨, 드뷔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젊은 시절 그의 리허설은 완벽한 음악을 위한 강행군이었다. 독설과 단원들에 대한 무시는 기본이었다. 노년의 그는 부드러워졌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멈추고, 반복하기를 ‘반복’한다.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과정이 음악의 정교함으로 드러난다. 그의 삶에 관한 영상다큐멘터리와 여러 편의 리허설 실황에 잘 담겨 있다.
단원들과의 마찰로 인해 떠났던 베를린 필과 38년만의 재회한 그의 브루크너 교향곡 7번(1992년)과 리허설 필름은 귀한 자료다.
해설지(34쪽·영문)에는 영상물 스펙이, 224쪽 분량의 하드케이스 책자(영·독·일어)에는 그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보조자료]
세르주 첼리비다케(1912~1996)는 지금으로 따지면 ‘뇌섹남’이자 ‘독설남’ 그리고 ‘완벽남’이었다.
베를린 예술대에서 철학, 수학, 작곡, 지휘를 공부했다. 그의 리허설은 가혹했다. 악단과 단원을 멸시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소리가 원하는 대로 나올 때까지 철저하게 리허설을 이끌어 갔다. 모두 암보로 지휘했다.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대우(1945~52)를 받았던 그는 젊은 날부터 이러한 자세를 고수했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1945~46), 스웨덴 방송교향악단(1965~71),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1971~79), 뮌헨 필하모닉(1979~96)에서도 자세는 변치 않았다.
20세기가 지날수록 녹음 기술은 완벽해져 갔지만 그는 녹음을 기피했다. 그 기술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1996년 첼리비다케의 사후 유족들은 비정규 해적음반이 범람하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미발표 리사이틀 기록을 EMI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공식 CD로 발매하도록 했다.
그동안 유로아츠, 아트하우스, 오푸스아르떼, 이데알레 오디언스 레이블 등에서 발매된 영상물을 한데 모은 박스물은 13장의 DVD(종이케이스)로 구성되었다. 해설지(34쪽·영문)에는 영상물 스펙이 담겨 있다. 224쪽 분량의 하드케이스 책자(영·독·일어)는 첼리비다케의 인터뷰다. 생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에 담았던 얀 슈미트-가레 감독의 첼리비다케론도 들어 있다.
이 박스물의 묘미는 그의 리허설 현장이다. 독설남은 말도 많다. 만년의 육중한 체력과 달리 그의 입과 언어는 선율 사이에 계속 박힌다. 그 말들이 단원들을 일깨우고 음악에 완벽을 더한다. 13장의 DVD 중 한국어 자막은 영상 ‘선동가와 철학가’(1DVD)에만 되어 있다. 하지만 리허설의 노장은 몸과 표정으로 모든 것을 다 담기에 자막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 첼리비다케의 팬이라면, 브루크너의 팬이라면 영상 관람 후 ‘광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