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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계몽’ 개념의 변천사를 살피다 계몽, 어둡게 가려진 것을 환하게 열어 밝게 해준다 어둡게 가리어진 것[蒙]을 환하게 열어 밝게 해준다[啓]는 우리말 ‘계몽啓蒙’은 여러모로 좋은 뜻을 지닌다. 지식이 필요한 이에게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영원한 밑천을 베푼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의식의 수준을 끌어올려 교양 있는 공동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막상 계몽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의 의미 자체를 묻게 되면 쉬운 답변을 기대할 수 없다. 계몽이라는 말이 우리의 개화기에 도입된 신조어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때 계몽되어야 할 대상은 서구 문명의 혜택을 맛보지 못하고 여전히 봉건체제에 정체되어 있었던 조선 사람일 것이다. 물론 계몽의 주체는 그 혜택을 일찍 맛본 조선인이나 서구 문명을 이끌어 온 서구인이 된다.
[도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 혁명
‘혁명’, 정치와는 거리가 먼 개념 그리스 시대 이래로 ‘혁명적 정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지만, 오늘날 '혁명revolution’의 기원이 되는 용어는 라틴어 ‘revolutio’다. 그렇지만 별의 순환에서 기원한 ‘revolutio’의 의미는 ‘어떤 시간 단위의 경과나 회귀’ 혹은 ‘세상의 순환이나 반복’으로 정치와는 관계가 멀었다. 혁명이 시간과 결합해 있는 동안, 서양 중세까지 정치적인 변화는 ‘봉기seditio/rebellio’, ‘모반coniuratio’, ‘반란insurrectio’ 등으로 쓰였다. 중세까지 언어 사용은 지배자 중심이었고 일방적이었으므로 그 단어들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세 말 정치적 의미 획득 ‘혁명’이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는 개념의 전환은 중세 말에 일어났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이해되고 사용되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이후 일반화되었다.
[도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3 : 근대적/근대성,근대
‘근대적modernus’, 현 제도의 타당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 형용사 ‘근대적modernus’에 관한 가장 오래된 용례는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발견된다. 칼케돈 종교회의의 결정들이 그 이전에 표준이었던 구 규칙antiquis regulis과 차별화되어 현재 제도를 타탕한 것으로 말하는 데 사용된 게 시초다. 6세기 초에는 이미 시대 구분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12세기에 이르면 ‘일시적인’의 의미가 부여되었다. ‘근대적modernus’의 세 가지 의미층위 이리하여 ‘근대적’이라는 개념은 크게 세 가지 의미층위를 지니게 되었다. 첫째, ‘이전’과 구분되는 ‘현재’의 의미이며 이전의 제도나 사상 또는 대상이 그때그때 다른 것들로 대체가능하다는 생각이 전제다. 둘째, ‘오래된’의 반대말로서 ‘새로운’의 의미이며, 과거 시대들과 구분되는 현대를 바라보는 태도다와 관련된다.
[도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4 : 보수,보수주의
‘보수’, ‘간직하다’와 ‘유지하다’ ‘보수’는 간직하다, 유지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conservare에서 유래했다. 파생어인 수호자conservator는 황제의 별칭으로 쓰였으며 14세기 이후에는 법과 재산을 보호하는 직위에 붙여졌다. conservator는 프랑스어conservateur에서 보호자 또는 보수주의의 의미가 되었고, 프랑스혁명 이후 혁명의 성과를 보호하는 정책을 표현하는 데도 쓰였다. 보수주의는 공화정이 왕정을 교체하는 국면에서 정치사회적 개념으로 부상했다. 1818년 프랑스에서 왕당파 기관지 《보수주의자》가 창간되어 자유주의에 대항하면서 프로그램을 갖춘 정치적 노선과 정당의 이름으로 쓰였다. 견고한 법적 질서 건설을 지향 프랑스어 conservateur는 영국으로 건너가 토리당원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으며, 보수당의 원칙은 전복적 원칙의 대항 개념이 되었다.
[도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지배계급의 두려움을 반영해온 ‘아나키’ ‘아나키’의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어 “아나르키아”라는 말은 ‘지배자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지배자가 없는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권위와 위계가 없는 세상일까. 반대로 법과 질서가 무너지는 세상일까. 경험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이 질문에는 여러 종류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담은 대답이 모두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단어로부터 일차적으로 상상된 내용들이 “무질서”, “방종”, “불법(무법) 상태” 등 두려움과 공포가 기반이 된 ‘부정적’인 의미들 일색이라는 사실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단어의 의미가 결국 단어를 사용하는 주체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한다면, 이 단어는 실은 민중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배계급의 두려움을 주로 반영해왔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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