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이미지
이전
일만 년 한문명의 대서사시 / 한바탕 크게 울만 한 이 시대 우리들의 이야기
이 책은 몇 마디로 말하기 힘든 책이다. 조선 시대 최고의 담론이자 인문서인 박지원의『열하일기』를 이을 이 시대 담론서라면 그 비유가 적당할까. 먼 옛날 우리 고대어의 하나인 ‘저문 해를 담아놓는다는 〈함지〉’만큼 품이 넓고, 첨단과학의 하나인 반도체 1bit 의 〈양공〉만큼 정밀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여기엔 우리 한겨레가 영속한 일만 년의 시간이 녹아있고, 핏줄을 타고 수직으로 흘러온 그시간과 만난 한반도라는 공간과 이곳에서 살갗을 비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좀 더 좋은 세상과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치는 꿈과 열정이 있다’ 라고 정리한 것처럼 우리의 실존적 삶을 이루는 역사와 문화와 사상과 과학 등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단순 명료하다. 일부 특권층만 흥청거리는 세상이 아니라, ’다함께흥겨운세상' 열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주적이며 부강한 나라를 공유하며 개개인 행복의 총량을 높이기 위해 우리 사회를 새롭게 구조화시키는 일이다. 저자는 그를 위해 전체를 네 개의 부로 나누어 각각 질문을 하나씩 배정해 놓고 해답을 얻어 간다.
제1부인 ‘하늘의 기억, 우리는 누구인가’ 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강요된 망각에 의해 잊고 있던 상고사를 추적하여 본래 우리 겨레가 지닌 위대성을 밝혀냈고, 제2부 ‘땅의 눈물, 어떻게 살았는가’ 에서는 그런 위대성과 찬란한 문화가 어떤 과정을 걸쳐 훼손되었는지를 논증한다. 여기까지는 역사담론 성격이 강하다면 제3부, ‘몸의 언어’ 편부터는 본격적인 실천담론이다. 8.15 해방 이후 미군정기에 예속된 우리 민족의 한계성을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주인의 수난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고 그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했다. 끝으로 제4부 ‘빛의 나라, 어떻게살 것인가’ 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승리의 기억을 토대로 우리 겨레의 미래를 생생하고구체적으로 제시해 놓았다. 그것이 바로 ‘다 함께 흥겨운 세상’ 이고, 지금 전지국적 환란인 코로나19의 모범적인 방역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인류문명을 선도해 나갈 세기적 세계적 맥동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것은 영속하는 시간의 한 매 듭인 카이로스, 즉 우리의 실존적 삶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함이자, 미래를 향해 다 함께 한걸음 내딛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모두를 총화하여 앞서 말한 세상을 열어가는 해답을 제시하고 실천적 행동을 이끌어 내는 담론이자 인문서이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상식을 뒤집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강렬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새로운 담론의 본령에 충실하다는 데 있다. 전복시켜야 할 주류담론을 향해서는 매우 엄정하면서도, 사람과 문명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어 그 진정성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이토록, 길고, 진지하며, 지적이고, 위태롭고도 희망을 안기는 글은 사람을 향한 깊은 사랑 없이는 쓸 수 없는 일인데, 이 책에서 그런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책읽기의 기쁨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