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쇼펜하우어가 내게 말한다. 음악은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음악은 감정의 본질을, 내용 없는 그릇을 전달한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구체적인 슬픔이나 구체적인 즐거움이 아닌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와 즐거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느낀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감정에서 추출한 정수"라고 표현한다. 슬픔 자체는 고통스럽지 않다. 우리
"질문을 살아요?" "네, 질문을 사는 겁니다.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 질문을 품는 거예요. 질문을 살아내는 거죠.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해결책을 찾아버려요." 좋은 말 같다. 질문을 살아내면서 남은 평생을 보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질문의 답은? 대답은 어디에 있는데? 이것이 바로 철학이 받는 부당한 평가다. 철학은 말뿐이야.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이지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지식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지식이 늘면 오히려 덜 지혜로워질 수도 있다. 앎이 지나칠 수도 있고, 잘못 알 수도 있다.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다.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는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
5장.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중국 농부의 우화를 생각해보자. 어느 날 농부의 말이 달아났다. 그날 저녁 이웃들이 위로해주러 찾아왔다.이웃들이 말했다. "자네 말이 달아났다니 정말 유감이네. 정말안된일이야.""그럴 수도." " 농부가 말했다. "아닐 수도 있고."그다음 날 말이 일곱 마리의 야생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그러자 이웃들이 말했다. 오, 정말 행운 아닌가. 이제 말이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