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우리 몸이 어떤 행동을, 창조적 행동을 시작했음을 가리키는 단어다.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은 쉽지만 방향을 바꿔 지옥에서 올라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름을 붙여서 하고자 하는 바를, 살고자 하는 바를 명백히 하지 않으면 상황은 저절로 개선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때의 이름은 한 사람의 존재 이유가 된다(어슐러 K. 르 귄은 "어스시의
세월호는 나에게 적어도 세 가지 질문을 안겨주었다.첫 번째, 우리가 다시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두 번째, 죽음이 그토록 아쉽고, 사라지는 모든 인간적인 것이 그토록 슬픈것이라면 삶이란 무엇일까? 삶이 이미 죽음에게 도둑맞고 있는 중이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야 삶의 소중함을 지킬 수 있을까? 세 번째, 이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가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날 죽었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우 리가 '삶'이라 부르는 그것이 유리창 너머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내 눈앞에 있던 것은 9·11의 어두운 건물 파편들이었다. 지금 존재하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처럼. 그 파편 너머,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상상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폐허만을 보게 되리라는 경고처럼.
인부들이 느티나무들을 뿌리째 뽑고 있었다. 마당에는 낡은 수건을 목에 맨 아빠가 삽을 들고 땀을 닦고 서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달려갔다."아빠 무슨 일이에요? 왜 나무들을 뽑는 거예요?" 나는 그때 아빠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곧 어린이날이니까." "그게 나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나무들을 초등학교운동장에 심어주려고." "왜요?" "애들이 축구하다가 나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매번 거의 같은 정도의 무력감에 시달렸다는 말이다. 그래도 믿을 만한 관계 속에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는 말이다(그래서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들은 함께 떠난다. "혼자서는 떠나지 마십시오, 믿을만한 친구와 함게 떠나세요"). 믿을 만한 관계는 다음 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된다. 이럴 때 인간관계는 현실에 존재하는 힘이고 누군가 힘이 있다
첫 번째는 일기 쓰기. 우선 당장 글쓰기는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과 같다는 말이 생각난다. 언제나 느끼지만 종이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종이 이에 뭔가를 적는 순간 종이는 다른 것이 된다. 글이 적힌 종이는 두 가지 시간을 살게 한다. 하나는 과거, 하나는 미래.....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단어를 모색하게 된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감정의 복잡함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네, 처음에는 무작정 썼어요. 사실 나 같은 사람의 하루하루가 무슨 쓸 가치가 있나 싶었는데요. 집에 돌아가면 뭔가를 쓸 거란 걸 나 스스로 아니까 조금씩 마음가짐이 바뀌더라고요. 일하다가 잠깐 본 구름이라도 조금 더 기억해두고 싶어지고 그랬어요. 사실 내 삶은 기록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고, 매일매일 똑같은 날이 될 것이고, 쓸 가치도, 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