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 시어머니는 아메리카 드림의 상실과 베트남전의 영향으로 고통 받았다. 역사의 아픔이 당신 인식이 되어 화병 속에서 사시다 가셨다. 아쉬운 것은 같은 여자라는 연대의식과 수평적 관계의 결여였다. 나는 진정한 만남은 혈연이나 촌수가 아니라고 본다.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에 있다고 본다.
결혼하자 이름이 필요 없었다. 새댁으로, 애기 엄마로, 누구 학부모로, 안 사람으로 살면 되었다. 근데 뭔가 허전한 느낌은 무엇일까 헛헛하고 공허함이 썰물로 밀려왔다. 그러다 여성 잡지에 글을 응모하고, 백일장에 나가고, 등단을 하면서, 내 이름을 다시 걸었다. 우편물이 많아지고 책을 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원장이 되었지만 딱 한 군데만 가면 내 이름이 없어지는 그곳은 시댁
학교와 집과 직장, 이 삼위일체 교육은 우리 여자들을 길들인다. 사회 질서에 편하게 우리 생각을 하나의 가치로 묶어두고 재단한다. 우리를 포르말렌 용액에 넣어두고 선택과 자유를 뺏는다. 이 생각 또한 40이 넘어 자각했다. 그 이전에 나는 주입식 교육 그대로 엄마의 입에서 전수한 대로 살고 있었다. 결혼한 이후 나는 순한 양에서 늑대가 되어서야 나를 지켜야 함을 알았다.
나는 가끔 '동물의 왕국'을 본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명확하게 보인다. 사람이 만든 큐범이 걷힌 동물의 세계는, 자연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선명히 보인다. 성장한 자식들을 어떻게 독립시키는지, 우리는 동물에게서 배워야 한다. 자식의 인생에서 어떻게 비켜나고 잔인할 만큼 돌아서야 한다. 각자의 삶에서 주인 되기가 진정한 자유다.
갑자기 나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 인생 최초로 나를 인식했다. 아, 내가 있구나. 누구도 아닌 내가 있구나. 낮에 같이 뛰놀던 아이들이 다 가면서 나를 챙기지 않아도, 내가 여기에 남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느꼈다. 갑자기 서러웠고 조금 울었다. 이 최초의 자기인식의 순간 나는 말간 슬픔을 가졌다. 서러움도 아니고 외로움도 아닌 오롯이 나라는 인식의 발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