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한숨이 나온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데이비드 스타 조 던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빠져나 갈 수 있었다. 이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우주적 정의의 감각 같은 건 그 까칠하고 무의미한 조직 속 어디에 도 새겨져 있지 않을 만큼 야멸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바닥 모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 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 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 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 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 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평생에 걸쳐 만나는 모든 사람에 게 물어왔던 질문이다. 그것은 내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에 관해 조사하며 여러 해를 보낸 이유였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던졌던 바로 그 질문이며, 내가 그 곱슬머리 남자를, 차가운 지구 에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그의 매혹적인 방식을 그토록 놓지 않으 려 버텨왔던 이유이기도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 모서리가 없는 조던. 뫼비우스 띠처럼 두 개의 면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하나인 면. 두 면 사이의 경계는 결코 찾을 수 없다. 데이비드는 왜 하필 이 생물이 자신을 반영한다고 느꼈을까? 이 선택에 일종의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토록 능숙하게 사람들의 마음과 일자리와 각종 상을 얻어냈던 친절한 남자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어두운 면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