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은 쟁취된 것이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 마치 하늘에서 툭 하고 존엄함이 떨어져 인간의 뼛속에 박힌 것처럼, 우리가 우리를 존귀한 존재라고 믿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모두가 존귀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류의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귀족만, 백인만, 남자만, 비장애인만, 이성애자만 들어갈 수 있던 존엄의 테두리를 계속 넓혀 온 역사를 알고 있다. 그 역사의 페이지마다
목련꽃 같던 우리 불이가 생을 마쳤다. 피고 지고 썩고 다시 움이 트듯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 모든 일이 자연의 한 과정인 줄은 알지만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 관한 것일 때 그것은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고, 당연한 것도 아니다. (…) 세상에 태어나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오직 사랑만 주고는 조용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여
나에게 인권 지표를 개발하라고 한다면 숙식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시민의 수와 막춤일망정 일주일에 1번 이상 춤을 추는 사람들의 숫자를 여기에 포함시키고 싶다. 이러한 권리를 표현의 자유라든지 문화향유권과 같은 거창한 말로 설명하지 않고 걱정 없이 춤추고 씻으며 살 권리라고 표현한다면 인권이 얼마나 쉽고도 다정하게 들릴까? 인권위 법의 인권의 정의 없이 이렇게 쉽게 고치
사실 나는 개인적인 문제로는 캐묻고 따지지 못하고 대강 넘어가는 편이다. 직업병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이 가져온 엉킨 실타래를 풀다가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그런지 내 일은 갈수록 웬만하면 어물쩍 넘기는 온순한 인간이 되어간다. 이런 온순함을 성숙해진 것으로 포장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냥 에너지 부족 현상일 뿐이다. 이거 굉장히 공감 ㅎㅎ
법적 강제력 있는 결정을 포클레인에 비유한다면 권고는 나무 자루가 달린 작은 삽이다. 포클레인으로 한 시간이면 끝낼 일을 삽으로 몇날 며칠을 걸려 퍼내는 셈이다. 삽질하기 같은 인권위에 일은 그래서 함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포크레인 같은 힘은 없지만 여럿이 천천히 꾸준히 한 삽씩 뜨는 진정성이 있고, 그 힘으로 길도 뚫고 산도 옮길 수 있다고 감히 믿는다.
머릿 속에서 그려지는 인권의 피해자들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무해한 존재이며, 선량한 시민이거나 무고한 희생자, 억울한 피해자였지만, 현실에서 만난 이들이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때때로 악랄하고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존재에 가까웠다. 그때마다 나는 놀라고 당황하며,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인권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사람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