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리속곳은 가장 안에 입는 속옷으로 지금의 팬티에 해당한다. 2. 다리속곳 다음으로 속속곳을 입는다. 속속곳은 단속곳과 비슷한 모양으로 크기가 작고 밑이 막혀 있다.3. 속바지는 속속곳 위에 입으며 일명 고쟁이라고도 한다. 남자 바지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밑이 터져 있어 용변 볼 때 편하도록 하였고 통이 넓고 허리끈이 달려 있다. 봄, 가을, 겨울에는 겹바지 솜바지를 입었고
속옷 하의는 무려 5겹의 속바지를 겹쳐 입고 그 위에 무지기치마 대슘치마를 입고 마지막으로 예장용 겉치마를 입었다. 특히 아무리 겹쳐 입어도 만족할 줄 모른다는 의미의 무족이에서 유래된 무지기치마는 하체를 풍만하게 보이기 위해서 치마를 부풀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상의로 입는 속옷으로는 속적삼가 가리개용 허리띠가 있다.
조선시대 치마는 계절이나 용도, 입는 사람의 신분과 나이, 취향 등에 따라 다양한 옷감과 색상이 사용되었고 바느질법이나 손질법도 다양하였다. 날씨가 더운 여름철에는 한 겹의 천으로 된 홑치마를 주로 입었고 추운 겨울에는 솜치마나 누비치마를 애용하였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는 솜치마나 누비치마는 사라지고 보통 홑치마나 겹치마를 많이 입었다.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고 다녔던 내외용 쓰개는 조선시대에 와서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다. 귀부인들이 얼굴과 몸을 가리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착용하던 몽수를 비롯하여 너울, 쓰개치마, 장옷, 천의(처네), 삿갓, 전모 등이 있었다. 조선 시대의 내외용 쓰개는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사회 변화와 함께 점차 사라졌다.
쓰개란 머리 보호와 방한 또는 치장이나 의례에서 격식을 갖추기 위해 머리에 쓰는 것으로 지금의 모자이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두의였으나 점차 장식, 신분의 표식과 상징 등의 목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특히 예를 중시하는 조선 유교 사회에서 쓰개는 품격을 갖춘 옷차림을 완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쓰개는 크게 추위를 막기 위한 방한용 모자인 난모계 쓰개와 유
조선 빈민가의 서민들은 자신의 딸을 세금으로 나라에 바치는 인신 조세라는 서글픈 제도 속에서 살았다. 나라에서 구휼미로 배급받은 쌀을 제때 갚지 못하면 딸의 몸값으로 대신하는 일은 그 당시 흔한 일이었다. 또 집안 가장이나 아들의 관직을 위해 딸을 기생집에 팔아 넘기기도 했다. 이렇게 딸들은 세금으로 때로는 죄를 면하거나 관직을 사기 위한 뇌물로 집안의 자산이었다.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