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가 속기 부호로 적어 두었던 그 유희의 도식을 늘 지니고 다녔다. 그 유희에 사용된 언어의 상징, 기호, 서명, 생략 부호에는 천문학 공식, 옛 소나타의 형식 원리, 공자의 말씀 등등이 적혀 있었다. 유리알 유희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는 그런 유희 패턴을 체스판 위의 패턴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만 각 말의 내용이나 작용이 훨씬 더 복잡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 자신을 예로 들어도 솔직히 나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학생들에게 음악의 ‘의미’에 대해서는 말해본 적이 없네. 그런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 의미는 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보다 나는 학생들에게 8분 음표나 16분 음표를 정확히 헤아리라고 강조해 왔지. 자네가 교사가 되건 음악가가 되건 그 ‘의미’를 존중하기는 하되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
크네히트는 이 자유에 매혹되었다. 특히 그처럼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의 경우 거의 천국과도 같은 자유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은 마음 내키는 대로 모든 학문 분야를 섭렵해도 상관이 없었고 여러 학문 분야를 융합해도 상관이 없었으며 한꺼번에 여러 학문에 빠져도 괜찮았고 아예 처음부터 하나의 학문에 몰입해도 좋았다. 이곳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도덕적
헤세는 히틀러 정권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리알 유희』의 집필을 시작해서 그가 57세이던 1934년 서장을 발표한 이래 10년이 지난 1943년 제2권 발간으로 완료되었으며 그는 그 작품으로 세계대전 이후 첫 번째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속세를 벗어나 조용히 풍요로운 삶을 살다가 1962년 8월 9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