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zentmihalyi는 저서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에서 몇 가지 실마리를 던져준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삶에 완전히 관여하는 과정이자 기쁨과 창의력”으로 정의한다.33 그리고 몰입은 비슷한 역설과 맞닥뜨린다. 바로 자의식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 칙센트미
헉슬리의 설명과 황홀경 발작을 경험한 사람들의 묘사가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사일로사이빈 같은 환각제를 복용한 사람들에 관한 신경 영상 연구들은 역시 섬엽피질과 전방 대상피질에서 과다 활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해왔다.28 남성 참가자 열다섯 명을 대상으로 한 이중맹검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아야와스카(아마존에서 주술 의식을 할 때 쓰는 향정
5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나는 메스칼린(선인장의 한 종류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일종의 환각제?옮긴이) 400밀리그램을 물 반잔에 녹여 마시고는 앉아서 그 결과를 기다렸다.”23 1953년 봄,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이라는 저서에서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기이한 모험은 이렇게 시작된다. 헉슬리는 정신의학자 험프리 오즈먼드Humphry Osmond(그는 “혹시라도 올
칙센트미하이는 자의식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최적 경험은 자아에게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한다”고 덧붙인다.35 이것은 역설이다. 예를 들어, 그 등반가는 자신의 몸 상태와 산의 지형 등은 아주 잘 인식하고 있으면서 자아의 어떤 측면은 중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의식을 잃는다는 것이 자아를 잃는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의식을 잃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의식만 잃는
러한 경험의 특성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것은 명상이나 몰두에서 얻을 수 있는 선禪의 느낌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한 가지는 일심一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의식ego을 등반과 한데 어울리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깨달음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 상태에 이르면, 어떤 면에서 자의식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ㄷ
한편으로 전방 섬엽은 만성 불안이나 신경증을 낳을 수 있다. 2006년, 마틴 파울루스Martin Paulus와 머리 스타인Murray Stein은 전방 섬엽의 기능장애로 예측 오류가 정상치보다 항상 잦게 일어나면서 나타나는 결과가 만성 불안이라고 주장했다.31 피카르는 황홀경 발작에서 그 반대 상황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32 전방 섬엽에 일어난 전기 폭풍이 예측 메커니즘을 방해해 예측 오류
따라서 여기서 사라져가는 것은 자아에 관해 알고 집착하는 반성적이고 자전적이고 서사적인 자아다. 그러는 동안 최소한의 자아, 체화된 자아는 온전히 존재하고 활동한다. 세스는 나에게 말했다. “고조된 자아인식과 고양된 세상의 연결감이 함께 존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현상학적으로 흥미롭습니다. 나는 그것이 우리 몸과 세상의 구분이 아마도 우리가 추정하는 것보
불교와 아드바이타에서 ‘무아’라는 개념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염려에서 나왔다. ‘나’, 그리고 ‘내 것’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에 고통의 뿌리가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것을 깨닫고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해탈이자 고통을 끝내는 길이다. 조나단 가네리는 말한다. “나에 대한 인지적 집착들이 그 자체로 일종의 병이자 장애의 근원이라는 것이 불교사상의 핵심입
이러한 발작들이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정서를 동반하다 보니, 자신에게 또 다른 종류의 발작도 있었음을 처음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것은 첫 번째 종류의 발작보다는 뜸하게 일어났지만 갑작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즐거웠다. 아주 즐거웠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그런 발작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최초의 기억은 대학교 때의 것들이었다. 마치 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 중 많은 인물이 간질을 앓는다. 《백치白癡》의 주인공 미시킨 왕자는 발작이 시작되면서 황홀경에 든다. “한 번인가 두 번쯤, 그는 가슴과 정신과 몸이 활력과 빛으로 깨어나는 듯했다. 그가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찼을 때 모든 불안은 영원히 사라진 듯했다.”5 미시킨은 심지어 소설 속 악당 로고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순간 나는 ‘시간은 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