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돌봄 이야기는 너무도 인간 존재에 밀착해 있기에 오히려 소홀히 취급되기 쉽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는 종착점이 보이기는커녕 원점 회귀적이어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만 같고, 시각적으로는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은 투명인간으로 간주되기 일쑤이다. 이처럼 굴절되고 왜 곡된 인식의 지평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돌봄의 역할과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q********2 2026.10.14. 신고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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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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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도둑을 순종적 노동자로 재규정하게 만드는 방법"이며, 그에 따라 "노동은 감옥의 종교"로 나타난다.* 푸코가 알려주듯, 감옥을 그저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사회에 동형적으로 확산된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때 감옥에서 노동의 기능은 사회에서 노동의 기능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불쉿 잡의 확산은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일의 확산이며, 이것은 앞서
q********2 2026.10.12. 신고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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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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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돌봄이 사회화될 때에도 비가시성과 저임금(혹은 비임금)이라는 조건은 유지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릴 때 들었던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그런 어른들의 말씀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조금 자라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고, 그것은 결국 위에서 인용한 연구들이 보여주다시피 사회적 가치에 무관심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타자-
q********2 2026.10.10. 신고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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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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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주고받는 일이 위화감 없이 자본주의 시장 안의 상품 거래처럼 다루어진다. 더구나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는 신자유주의의 기조는 사회적 의제라고 하여 비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돌봄의 문제는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시장 안 개인 대 개인의 관계로 환원된 측면도 커보인다.
q********2 2026.10.10. 신고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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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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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남성의 돌봄은 주로 아이돌봄에 초점이 맞춰졌거나 한정되어 있다(김양지영, 2016). 이는 남성의 돌봄에 중점을 두기보다 '아버지 됨'이라는 이성애에 따른 결혼과 부양, 그리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아이(자녀)돌봄 을 하는 남성은 아버지로서 이미 남성성의 강화이자 생계부양자의 역할에 불과하며, 남성의 돌봄 참여로 성역할 이데올로기의 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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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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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베르는 어느 활동가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우리 의 일상생활에서 시작하고 그런 다음 정치적 용어로 번역된다. 일상생활이 없으면 조직 이 없고, 조직이 없으면 정치가 없다."(Silvia Federici, "Women's Struggle for Land and the Common Good in Latin America," in Re-enchanting the World: Feminism and the (Oakland, CA: PM Press, 2019), 142.) "그것(돌봄
q********2 2026.10.08. 신고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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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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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현재의 노동 구조에 대한 '대안'이 있냐고. 임금을 보전하면서도 획기적으로 노동 시간을 줄이는 일이 가능하냐고.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는 핵발전소의 대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김종철의 대답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그러한 물음이 "지나치게 한가로운, 우둔한 물음"이라면서 "대안이 있든 없든 핵발전은 시급히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
q********2 2026.10.08. 신고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