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모두에게 열려 있으니 이것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 듯하다. 프리다이빙은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스포츠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는 스포츠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나 싶다. 여행을 다니며 만난 프리다이버 중 시간과 돈이 넘쳐나서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는 바
못하는 연습, 내려놓는 연습, 욕심을 버리는 연습, 힘 빼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다. 마구 몰아치고 한계까지 몰아붙여 내가 성과를 내게 하고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지내왔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들을 얻어왔지만 그보다 더 크고 넓은 것을 갖고 싶다. 오래 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만들고 싶어서. 그러려면 지금과 같은 속도와 방식이어서는 안 됐다. 그걸 배
내 기쁨을 누리고 있자니 그제야 나 말고도 자기만의 문제에 매달려 매일의 실패를 견디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시도가 얼마나 고단한지 조금을 알 것 같았다. 무언가를 이루거나 성공하지 않은 날에도 물에, 바다에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내가 잘 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인생이 가졌던 것을 잃어 애도하는 마음과 갖고 싶었던 것을 얻어 기뻐
오늘 다이빙은 쉬었다. 좀 쉬면 기관지 상태가 괜찮아져 이퀄라이징이 잘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감기도 나아가고 있다.이곳에서 행복할 수 잇는 또 다른 이유를 안다. 하나는 돈을 벌지 않고 쓰고만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이유가 매우 강력한데, 집안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민진 작가가 유튜브 영상속에서 울면 나도 따라 운다. 그의 강연 영상을 여러 개 연달아 보면서 그가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고 그 덕분에 독자도 관객도 그와 진심으로 만날 수 있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지점이 인간에게 잠재된 신성이라고 느낀다. 인간에게 남아있는 약간의 신적인 부분. 종교와 관계없이 말이다.글쓰기 혹은 예술을 통해 인간이 하는 말은 결국 거의 비
하와이에서의 교통사고와 스스로 숨을 참고 바다에 들어가는 프리다이빙, 둘 다 내가 일상에서 다연하게 여기던 삶의 감각에 균열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숨을 쉬고 살아 있따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 숨을 참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는 것을 좋아하고 누리고 있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 선뜻 인정하지 못했을 뿐. 살고 싶다는 마음은 왜 조금은 창피하게 느껴
내가 아무리 힘을 빼려고 해도 몸은 무의식적으로 긴장 풀기를 거부했다. 성문, 연구개, 경구개, 혀뿌리... 도대체 이것들을 어떻게 세심하게 조율한다는 말일까? 내가 일상에서 제대로 인지하면서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들이었다. 글로 배울 수 없는, 스스로 경험을 통해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나는 책으로 배운 것들, 글로 쓰인 지식들이 다양한
마음이 먼저 갈 때는 몸을 기다려주고 몸이 먼저 갈 때는 마음을 기다려주며 나 자신의 정렬이 바로 선 채로 가고 싶다. 그것이 왜 이다지도 어려울까. 나는 나를 기다려주기 위해서 보홀에 온 것이 아닐까. 프리다이빙에 빠진 것이 아닐까.여기서 다이빙을 하면서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건 오래 한 사람이건 모두 같은 프리다이버라는 메세지를 계속해서 받고 있다. 백 미터를 육박하는
우리는 어두컴컴할 때 마우나케이산에 올라 별과 달을 보고 마지막으로 해가 떠 그 모든 밤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별에서 온 존재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의 모든 분자의 모든 원소의 모든 원자는 오래전 우주 공간에서의 폭발로 만들어졌으니까. 그러니 별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올려다보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