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니. 그렇다, 죽음.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가엾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즐길 따름이다. 저들도 아무려나 마찬가지야, 어차피 다들 죽을 테니까. 바보같이. 나는 좀 일찍, 저들은 좀 있다가 떠날 뿐이다. 저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매 순간 투쟁하려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소름 끼치는 그곳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고있음을 느꼈다. 이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괴로운 일임을, 더군다나 그 스스로 뚫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더 괴로운 일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 구멍으로 들어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삶이 훌륭했다는 의식이었다. 자기 삶에 대한 이러한 정당화가 그를 옭아맨 채, 앞
엉엉 울고 싶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울어 주고 어루만져 주길 바랐던 이반 일리치는 법원 동료인 셰베크가 찾아오자 울음을 터뜨리고 다독임을 받기는커녕 곧장 진지하고 엄격하고 고뇌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관성에 따라 상소심 결의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그것을 집요하게 고수했다. 이 거짓,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거짓이야말로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나날을 독살하
저들이 그를 두고 저런 소리를 늘어놓으면 거짓말 좀 그만하라고, 내가 죽어 간다는 사실을 당신들도, 나도 알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적어도 거짓말 좀 관두라고 외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호기를 부린 적은 없었다. 그가 보기에 자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죽어 간다는 이 무섭고 끔찍한 사건을 어쩌다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일정 부분
카이사르는 정확히 필멸의 존재고, 따라서 그가 죽는 것은 옳지만 나, 바냐,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이반 일리치라면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어야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 끔찍한 일이다.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도 카이사르처럼 필멸의 존재라면 그런 줄 알았을 것이고 내면의 목소리가 나에게 그렇노라고 말해 주었을 텐데, 내 안에선 그 비슷한 어떤 낌
'문제는 맹장도 신장도 아니야, 삶과...... 죽음의 문제다. 그렇다, 삶이 있다가 지금 떠나는, 떠나는 중인데도 나는 그것을 붙잡아 둘 수 없다. 그렇다. 뭣 하러 나 자신을 기만 할 것인가? 내가 죽어 간다는 사실을 나만 빼고 모두 분명히 아는데. 문제는 오직 몇 주냐, 며칠이냐 하는 것뿐이야.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른다. 빛이 있었지만 바야흐로 암흑이다. 내가 여기에 있었는데 이
이 모든 절차는 그동안 이반 일리치가 피고에게 그토록 휘황찬란하게 늘어놓은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의사는 역시나 휘황찬란하게 요약해 준 다음, 안경을 살짝 내리고서 의기양양하고 즐겁게 피고를 내려다보았다. 의사의 요약문을 통해 이반 일리치는 나쁘다는, 즉 의사는,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 역시 관심 없을 테지만 자기 상태가 나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 결론에 병적으로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