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널린 '고민거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어찌 되건 별 지장 없는 고민. 또 하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고민. 이 두 부류 고민의 공통점은 괴로워하는만큼 손해라는 사실이다. 애써서 해결될 일이라면 고민할 시간에 노력하는 것이 최고다.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노력해봤자 헛수고다. 하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할 수 없을 때는 기분
인간은 도시에 살고, 너구리는 땅을 기고, 덴구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헤이안 천도 이래 이어져 내려온 인간과 너구리, 덴구의 삼파전. 덴구는 너구리에게 설교를 늘어놓고, 너구리는 인간을 호리며, 인간은 덴구를 두려워하면서도 공경한다. 덴구는 인간을 잡아가고, 인간은 너구리를 전골로 만들어 먹고, 너구리는 덴구를 함정에 빠뜨린다. 이렇게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돈다. 돌아가
세면대에 매달린 지저분한 거울 앞에서 벤텐으로 둔갑했다. 홀딱 반한 사람으로 둔갑해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생김새는 똑같아졌지만 거울을 봐도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 뜻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 뜻대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의 차이에 반하는 맛이 있다. 하기야 기묘하기로 따지자면 너구리인 내가 인간에게 반한 것이 더 기묘한 일이다.
살아가는 한 이별을 겪지 않을 수는 없다. 인간이나 덴구나 너구리나 다 마찬가지다. 이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슬픈 이별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고마워서 속 시원한 이별도 있다. 성대한 송별 파티를 하며 요란뻑적지근하게 헤어지는 이도 있고, 누구의 전송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이별하는 이도 있다. 긴 이별이 있고 짧은 이별도 있다. 일단 헤어진 이가 멋쩍은 듯이 훌쩍 돌아오는
바보라서 숭고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긍지로 삼는다. 춤추는 바보로 보이는 바보. 같은 바보라도 춤추는 바보가 낫다고 한다. 그렇다면 멋지게 춤추면 된다. 우리 몸속에 매우 진한 '바보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한 번도 창피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이 태평성대를 살아가며 맛보는 기쁨이나 슬픔도 모두 이 바보의 피가 가져다주는 것이다.
나는 일찍이 너구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까다로운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재미있게 사는 요령은 알고 있는 셈이지만 그 밖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고다.” 이건 그 유명한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다 보니 아무래도 재미있게 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
"또 물에 던져 넣으면 싫어! 추워서 죽을 거야! 정말 싫어!"나는 창틀에 매달린 금각과 은각을 향해 씩 웃었다."차가운 가모가와강 물이 낫겠니, 아니면 펄펄 끓는 철제 냄비가 낫겠니?"금각과 은각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창틀에 매달린 채로 한동안 코만 움찔움찔 떨다가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가모가와강으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