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펼쳐 침범이란 단어를 찾아보았다. 침범을 설명하려고 모여든 단어는 죄다 모호했다. 경계가 불분명했다. 침입이란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침입을 알기 위해서는 침범을 알아야 했다. 세상에 사전 만큼 소용없는물건도 없었다. 결국 스스로 정의 내렸다 '장민석'이다. 이 상황을 설명할 단어는 그뿐이다. 침범도 침입도 침략도약탈도 박탈도 메우지 못한 상 황과 감정의 절묘한
그런데 어째서 죽은 아버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족스럽다는 글을 남겼는지, 그럴 수 있었는지, 그것이 과연 진심인지, 진실인지, 죽은 아버지는 정말 만족하여 만족스럽다는 글을 남겼는지, 만족스럽다면서 왜 죽었는지, 내가 말하는 만족과 그가 말하는 만족이 과연 같은지, 죽은 아버지가 느낀 만족이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차라리 죽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만, 그것은 어
너무 욕심을 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들 그 정도 욕심은 내고 살지 않나. 아닌가. 욕심을 채우면서도 죽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아니다. 모두 죽는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죽진 않는다. 아니다. 욕심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아 니다. 욕심 없이 살아도 죽긴 죽는다. 그 때문에 인생은 비극이다. 비극과 불행은 다르다 행복하고 싶었다.
해가 지지 않는 땅. 끔찍한 대륙. 그곳에서 나는 개가 되어 달린다. 개가 되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원도는 검은 개가 된다. 태양을 등지고 달리는데, 등졌다고 생각한 태양이 눈앞에서 작열한다. 눈알에 박혀 벗어날 수 없는 빛. 하나는 위험하다. 비교 불가능하다. 둘은 위험하다. 경쟁이 시작된다. 셋은 위험하다.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다. 넷은 위험하다. 비밀이 사라진다. 다섯은 위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죽음은 생각지 못한 때에 오고, 사형수조차 자기가 죽을 날을 미리 알지 못한다.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으며 한 명 한 명 어이없이 죽어버리는데, 원도가 생각한다, 나는 어째서 죽지 않았는가. 정말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살아 있는 원도를 거듭 위협했다.
죽을 때까지 맞겠다고 말할까? 어쩌면 그게 하얀 밥에 가장 가까운 대답일지도 모른다고, 산 아버지도 그것을 원 한다고 원도는 생각했다. 어중간하게 다섯 대요, 열 대요, 산 아버지는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저는 맞아 죽 을 만큼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어요.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요 그러니 죽여버려요. 다시는 아무 잘못도 못 하게 지금 여기서 죽여버려요. 그런 대답을 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