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리 막대를 가져가려는 이유는 어른들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야. 너희들을 살리기 위해서야.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슬프고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살아야만 하는거야. 어른들이 우릴 하찮게 여긴다고 우리까지 우리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돼. 벌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바득바득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거야. 그게 피카르디와 베
소렌은 아직도 혼란과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왜'라는 질문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디노비크가 나를 구하다니 세상에서 이것보다 불가사의한 일이 있을까? 세상에서 나를 제일 미워하는 줄 알았던 인간이 나를 구했을 때 그 당혹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저항할 수 없는 불합리에 짓눌려서 슬픔과 분노를 품은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이 세상을 한 번쯤 불태워 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당장의 배고픔을 먼저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타협하여 규칙 앞에 점점 온순해진다. 그것이 세상이 가난한 자를 길들이는 방식이었다.
가즈니목마른 사람을 마음대로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물을 준 다음에 부탁을 할까? 아니야.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한 방울씩 물을 주면 너는 네 손발을 움직이는 것보다도 더 쉽게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어. 뭐든지 부족하면 총칼보다 무서운 무기가 돼. 부족해야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거야.
그것도 있지만 진짜 힘든 이유는 그게 아니란다. 네가 힘든 이유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야. 고아들은 그걸 배울 기회가 없지. 그게 너의 잘못은 아니야. 너를 낳은 부모의 잘못이지. 하지만 괜찮다. 이제부터 배우면 돼. 더 중요한 가치란 발전소 전체를 말한단다. 네가 노를 저어서 만든 전기로 발전소의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고, 숨쉰다는 것을 생각해 본